기독교의 쇠퇴, 무관심한 구원

종교인구 감소세의 원인

by 한신자

많은 분들이 줄어드는 종교인구를 바라보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정의에 대한 갈망과 진리에 대한 갈급함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표현하기까지 합니다.


개신교인인 제가 피부로 느끼는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전도가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믿음의 가정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이 믿음을 포기하는 현실이기에 이 우려는 결코 기우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개신교의 뿌리인 영국과 미국에서 종교인구의 노령화와 교회 건물의 전용이 왕왕 일어나고 있습니다.


개신교 안에서는 지금 발생하는 쇠퇴의 원인으로 말씀과 행동 따로인 기독교인, 지루한 예배 시간, 폐쇄적인 공동체, 권위주의적이고 경직화된 교회의 문화와 분위기, 헌금에 대한 부담, 교회 내의 은폐된 범죄와 혐오주의자로의 낙인 등 여러 요인을 꼽습니다. 요인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면 (개신교인으로서 정말 가슴 아픕니다만) 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매일 개혁되어야 하는 교회가 전혀 개혁되지 않기에 우리는 쇠퇴와 무너지는 현실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이 사라지고 예배가 소홀해지며 말씀이 희귀한 교회가 무너지는 것은 당연하고 이런 개신교가 쇠퇴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위와 같은 개신교와 교회의 현실 속에서, 세상의 변화는 종교인구의 감소를 더욱 가속화시킵니다.


세상은 더 이상 구원을 바라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독교 구원에 무관심합니다.


기독교 구원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세상은 사람의 죄로 인해 질서가 없는, 어둡고 공허한 곳이다. 세상 속의 사람은 죄로 인해 끝없는 탐욕과 고통을 느끼다 끝내 죽음에 이른다.
예수님이 오심은 이런 세상에 하나님의 질서가 회복되었다는 선언이다. 사람은 고통받다 죽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자녀로 부름을 받아 영생을 누리는 존재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크게 두 가지 도구를 사용해 구원의 필요를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하나는 돈의 질서를, 나머지 하나는 중독을 이용합니다.


돈의 질서는 (여러 도구와 결합되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돈의 가치로 정렬하여 바라보게 만듭니다. 행복이나 사랑 같은 무형의 재화를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은 진부하고도 교과서적인 외침이 된 지 오래입니다.

돈의 질서에서는 사람의 가치가 돈의 가치로 표현되며, 개인의 가치를 높인다는 의미가 고액의 연봉을 받는다는 뜻이 되어버렸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적법, 불법을 막론하고) 세금을 적게 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부당하고도 지독한 갑질에 분노하지만, 막상 갑의 위치에 이르면 자신의 갑질은 정당한 돈을 지불하고 누리는 합리적인 서비스로 이해됩니다. 연인 사이의 사랑은 선물의 금액이나 명품의 숫자로 보입니다. 친구의 진정한 우정은 축의금과 부조금으로 판단됩니다.

이런 세상에서 기적과 구원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아니라 로또 당첨이나 부동산 증여 같은 막대한 자산 획득입니다.


중독은 탐욕과 고통을 잊게 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마약, 술에 한정되지 않고 우리가 생각하고 성찰할 시간을 빼앗는 모든 것이 중독입니다. 영상 중독, 관계 중독, 관심 중독, 일 중독, 사람 중독, 사상 중독, 맛집 중독 등 정말 다양하고 우리의 일상과 아주 밀접합니다.

이 밀접한 중독은 어마어마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해야 할 우리가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중독된 것을 할 수 없거나 가질 수 없을 때, 사람은 이 갑갑하고도 절망스러운 현실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쉽게 생각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중독된 그것이 사람의 목숨까지 요구한다면, 중독된 사람은 기꺼이 죽음을 향해 스스로 몸을 던질 것입니다.


돈의 질서와 중독의 결합은 끔찍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중독이 돈의 질서 안에서 '마땅히 해도 되는-심지어 반드시 해야 하는-모습'이 되었습니다. 관심에 중독되어 그것을 갈구하는 행동이 돈의 가치가 높다면, 그 행동은 중독이 아니라 돈을 얻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모습입니다. 자신의 행동이 돈으로 긍정되니 사람은 더 과도하고 과격한 행동을 합니다. 더 큰돈이 들어옵니다. 관심의 중독에 돈의 중독이 더해집니다. 많은 돈으로 이전에 하지 못한 것을 쉽게 구매합니다. 중독이 중독을 부르는 질서에서, 자신의 모든 탐욕이 돈으로 '정당하게' 소유할 수 있기에 사람은 현실적인 탐욕과 고통에 무감각합니다. 죄와 악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죽음은 더더욱 먼 것으로, 드라마에서 증오하는 악인이 죽는 모습을 보며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것 정도로 다가옵니다.

죽음으로부터 구원의 문제는 더 이상 세상 속 사람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기독교인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균형 있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와 우리 안에서 문제점을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만, 스스로에게만 향하는 자학과 정죄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구원에 무관심하고 자신이 무엇에 중독되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잠언 19장 21절》


이것이 제가 믿는 기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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