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많은 믿음 속에서 살아갑니다.
도로에 다니는 차가 공장에서 만들어졌다는 믿음, 예수가 온 날로부터 2024년이 지났다는 믿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는 분단되어 있고, 과거에는 조선, 고려,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이름의 국가였다는 믿음, 태평양을 건너면 미국이 있다는 믿음,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으며 달이 지구를 돌고 있다는 믿음, 태양이 속한 우리 은하가 있다는 믿음,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통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는 믿음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우리가 속한 믿음은 사실 우리가 선택한 믿음입니다. 직접 경험하거나 결과를 보고 그것이 사실이라 믿기도 하지만 교육이나 상식, 문화가 검증한 사실을 우리는 믿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상식이라 부르는 것은 이렇게 선택한 믿음들의 집합입니다. 상식이 집합적 성격을 띠고 있어서인지, 우리는 상식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입니다. 반면에 상식을 거부하거나 상식과 다른 것을 말하는 사람을 배척합니다. 마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상식이라 생각하는 것을 해체해 보면 믿음과 선택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세상의 상식을 해체하면 두 가지 기초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신이 있음을 믿는 것'과 '신이 없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질문 두 개가 등장합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믿는 사람에게 '네가 믿는 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와, 신을 믿는 사람이 신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그럼 너는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가 바로 그것입니다. 신을 믿는 사람이 수만 가지의 이유를 들어 '그렇기에 나는 신을 믿어'라고 한들, 신을 믿지 않는 자의 '신의 존재를 믿어야 할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을 선택하는 문제이기에 그렇습니다.(또한 이 두 질문은 상대를 비난하고 상대의 믿음을 부정하려는 의도가 다분하기에 가장 어리석은 질문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신이 존재함을 믿는다는 것은 믿지 않는 것에 대한 부정입니다.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에 대한 부정입니다. 자연히 하나의 믿음에 대한 선택은 다른 선택에 대한 거부입니다. 유신론과 무신론을 기반으로 쌓아 올려진 상식을 가진 사람끼리 대화하기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사람의 상식은 믿음의 선택이 모인 집합이며, 그 중에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상식에는 신이 있다는 믿음과 신이 없다는 믿음을 선택한 것을 기반으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