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예수님이 살던 1세기 그리스도인의 눈으로 지금을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상상해 보았습니다.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기술들이 구현되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라겠지만, 조금만 더 우리 사회를 들여다본다면 하나님 나라가 정말로 계속해서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감사할 것이라 저는 단언합니다.
우리는 천부인권이 당연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인 인권을 우리가 자연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천부' 즉 하늘 아버지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주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불과 300년 전만 하더라도(우리나라는 100년 전만 하더라도) 계급이 보편적으로 인간을 규정하였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 나라가 세상과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레24:20] 상처에는 상처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을지라 남에게 상해를 입힌 그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며
함무라비 법전을 위시한 고대 근동시대에 레위기의 규정은 당대에 아주 선진화된 것이었습니다. 이 규정은 내가 당한 만큼 똑같이 보복하라는 적극적 규정이 아니라, 내가 당한 만큼만 보복하라는 한도적인 규정이었습니다. 사람의 복수심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해서, 내가 손해 받은 것 이상의 것을 요구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설사 그것이 상대의 목숨이라도 말입니다. 레위기의 규정은 이 마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보복의 한도를 정해주는 당대에 있어서 아주 세련된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눈으로 이 규정을 바라보면 아주 잔혹하고 심지어는 야만적으로까지 느껴집니다. 법학과 사법체계의 발달로 우리 시대의 규정은 단순히 피해자의 복수심의 충족이나 손해배상정도가 아니라, 죄를 저지른 사람의 뉘우침과 새사람으로의 거듭남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세상의 사법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정신이 된 것입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마가복음 1장 15절》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하나님 나라는 우리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1세기부터 21세기가 된 지금까지 2000년의 시간 동안 하나님 나라는 세상과 가까워졌고, 가까워진 만큼 세상은 하나님 나라에 영향을 받아 하나님 나라화가 진행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세상 곳곳에 복음을 신뢰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던진 우리의 선배들이 하나님과 함께 동역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의 하나님나라화된 세상을 누리는 것을 넘어, 아직까지 복음이 미치지 못하는 곳, 분야, 영역에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더불어 하나님 나라가 침투했으나 진노의 세력에게 오용되는 곳으로 나아가 다시끔 하나님의 뜻에 맞게 되돌리고 운영해 나가야 합니다.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먼저 시작하셨고, 그분의 긍휼하신 초대로 우리가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에는 어떤 도움도 필요 없지만, 그분의 위대한 사랑이 우리와의 동역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감사한 초대를 기쁨으로 반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