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록 죽음의 그늘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나를 보살펴 주시니, 내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시편 23편 4절》
그리스도인은 매 주일 하나님과 이웃들 앞에서 우리가 믿는 믿음을 고백합니다. 이 믿음의 고백은 이렇게 마무리가 됩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부활과 영원한 삶을 믿습니다. 그러나 삶을 살다 보면 이 고백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두려움이 우리를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과거 조상에게 제사를 드렸던 문화는 죽은 자의 넋을 기리는 목적도 있었지만 살아있는 자를 위로하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고 생각합니다. 내 편 하나 없는 두려운 이 세상에서 홀로 남겨진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제사의 순기능이었습니다. 홀로 남겨진 두려움을 이겨낼 힘과 상실의 아픔을 위로할 힘이 과거의 제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에게 찾아온 이후로 제사의 목적과 순기능은 의미를 잃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해 혼자 남겨진 것만 같은 때에도 우리와 계속해서 함께하는 위대하고 선한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이길 힘은 제사의 위로가 아니라 부활의 소망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영원을 누리는 존재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두려움은 더 이상 우리에게 두려움이 되지 못합니다. 복음의 하나님이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셨음을,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먼저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성령이 임재하셔서 우리를 끊임없이 보살피심을 우리가 믿기에 그렇습니다.
전통적인 마법의 주문, '죽기밖에 더 하겠냐'는 그리스도인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주문은 '부활하기밖에 더 하겠냐' 혹은 '영원히 살 건데, 뭐 어때.' 정도가 될 것입니다.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 두려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합시다. 하나님이 반드시 부활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하나님이 영원한 삶으로 초대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