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에 관한 대화

by 한신자

이번 주 말씀 주제인 ‘사랑’을 놓고 찬양인도자와(이하 ‘한’) 기도인도자가(이하 ‘리더’) 나눈 대화입니다.(축약을 위해 각색했습니다)


: 사랑이란 무엇일까?

리더 : 사랑은 경험상 내가 손해를 봐도 용납하는 것, 오래 참는 것이라고 생각함

: 사랑은 신실한 것, 꾸준하고 성실한 것이라 생각함. 내가 받은 사랑이 그러했고 내가 하는 사랑의 표현이 그러함.


이 대화를 바탕으로 2가지 질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1. 내가 직접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은?


리더 : 직접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관계로 힘든 시간 가운데에서 기도 중 느꼈던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랑이었다. 이 사랑으로 혼자가 아님을 느꼈고, 이 사랑의 경험이 그 이후의 힘든 시간을 이겨낼 힘이 되었다.

: 최근에 묵상하며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데, 다시 보기 부끄럽고 외면하고픈 글들이 아니라 올 한 해 하나님이 말씀으로 함께 하셨다는 감동과 사랑을 내 글 안에서 발견하였다.

리더 : 우리의 나눔 속에서 형태는 다르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만은 동일한 것 같다.


: 생각해 보면 참 오묘하다. 신실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정의가 같이 있다는 것이. 공의와 정의가 엄중하고 무서운 느낌이라면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은 반대되는 느낌이지 않나.

리더 : 반대의 느낌은 아닌 것 같다. 사랑과 정의가 함께하는 것이 우리의 복이 아닐까. 공의와 정의로 우리의 삶에 가이드라인이 제시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 내가 잘못 생각했다. 공의와 사랑이 함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과 같은 차별적인 사랑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차별적인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예수님은 그런 우리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 했지 않냐.

리더 :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까지 부단히 노력하라는 것이지, 그것을 똑같이 실현하라는 말씀은 아니지 않으냐.

: 우리 노력의 종착은 결국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아닌가. 공의와 사랑이 완벽히 합치된 십자가의 사랑이 목적지가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많이 묵상하게 된다.



2. 사랑이 손해를 용납하는 것이라면, 나는 어디까지 손해를 감당할 수 있는가?


리더 : 상대방이 나를 존중해 주는 지점까지, 무시당하는 지점부터는 감당하기 어렵다.

: 반대로 이야기해서, 너를 존중(인정, 이해)하는 것이 사랑으로 다가오는가?

리더 :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존중은커녕 존재 자체가 무시당하고 멸시당하는 십자가의 그 고난과, 그 고난을 경험하면서까지 사랑한 예수님을 생각해 보았을 때, 나와는 참 많이 비교되는 것 같다.

: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씀 전에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등의 비유에 담긴 당대의 의미는 ‘나를 멸시하지 말고 나를 존중해라’라는 의미다. 이런 것으로 보았을 때, 사람의 손해에 대한 용납의 마지노선은 존중에 있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된다.

리더 : 그 시대의 그런 행동들이 ‘당신의 행동은 나를 존중하고 있지 않으니 당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나를 존중해라’라는 의미라면, 그 상황에서 사랑의 의미는 상대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 정확하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은 나에게 손해를 끼친 상대에게까지 회개의 시간과 돌아올 공간을 허락하는 것이 아닐까.

리더 : 운전할 때 갑자기 끼어든 앞차를 보며 곧바로 클락션을 울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비상 깜빡이를 킬 여유를 주라는 의미 같다.

여유가 없는 세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어떻게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남을 한번 더 기다려 줄 수 있을까.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라면 아등바등 살아야 하나, 영원한 삶이 있다는 것을 믿고 부활을 소망하기에 여유를 가지고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마무리 대화


리더 : 대화 중 계속 마음을 찌르는 것이 ‘상대방을 용납할 수 있는 그리고 용납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부분이다. 이런 의미에서 상대방을 용서하게 해 달라는 간구 또한 사랑이지 않을까.

: 그런 것 같다. 더 나아가 용서하게 해 달라는 간구를 하나님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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