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로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가 사는 날 동안 나를 따르리니, 나는 주님의 집으로 돌아가 영원히 그 곳에서 살겠습니다.
《시편 23편 6절》
어릴 적 '예수님 믿으면 천국 간다'는 내 말에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바로 직전에 예수님을 믿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문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반문에 대한 대답을 못했고 한동안 이 반문을 붙잡고 씨름해야 했습니다. '이야 대단하네! 니 죽을 날을 다 알고 있고!' 한마디면 될걸 말입니다.
당시 상대의 반문에 씨름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불공평하다'였습니다. 모태부터 평생 기독교 신앙을 지켜온 사람과 죽기 바로 직전 믿는다 고백한 사람이 똑같이 천국에 갈 수 있다니,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는 포도원 품꾼 비유가 나옵니다. 이른 아침에 포도원의 주인이 품꾼을 고용하며 한 데나리온(당시 노동자 하루 품삯) 줄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고 나서 주인은 오전 아홉 시, 오전 열두 시, 오후 세시, 오후 다섯 시에 나가서 노는 품꾼들을 발견하고 자신의 포도원에 고용합니다.
일이 다 끝나고 저녁이 되어 품삯을 나눠줄 때, 포도원 주인은 시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약속한 한 데나리온을 나눠줍니다. 당연히 먼저 온 사람들은 불평합니다. 늦게 온 사람과 일찍 온 자신이 동일한 품삯을 받는 것이 불공평하다 투덜댑니다.
그때 선한 주인이 답변합니다.
"당신에게 주는 것과 똑같이 마지막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내 뜻이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내가 후하기 때문에 당신 눈에 거슬리오?"
어릴 적의 저는 천국 가는 것에 대해, 구원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구원하는 자의 뜻에 구원이 전적으로 달려 있지, 구원받을 자의 노력은 그 어떤 것이라도 구원하는 자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천국 가는 것에 대해 '그래도 나 정도면 천국에 합당하지 않을까. 나는 천국에 들어갈만한 선한 사람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하나님의 결정은 나의 그 어떤 노력, 모습, 성품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 결정은 하나님이 전적으로 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은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그 어떠함이 구원에 영향을 미친다 하는 순간 세상 그 누구도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오해하고 있었던 것은 '영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모태부터 평생 기독교 신앙을 지켜온 사람과 죽기 바로 직전 믿는다 고백한 사람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0.99999... 와 1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만약 우리가 누리는 구원이 한정되어 있고 유한하다면 '의인의 커트라인'을 정해서 구원을 쟁취하기 위해 경쟁해야 할 것입니다. 더군다나 의인의 커트라인은 하나님이 하시는 절대평가라 아무도 그 커트라인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목숨으로 주신 구원의 은혜는 0.9999.... 뿐만 아니라 0.6, 0.4, 0.1도 동일하게 1로 여길 만큼 영원하고도 한없는 선물입니다. 세상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입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원을 누리게 당신의 나라로 초대하는 능력입니다.
더 나아가 불공평하다 느끼는 사람은 오히려 죽기 직전에 믿은 사람일 것입니다. 모태부터 신앙을 지킨 사람의 삶은 오늘 시편의 노래처럼 주님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이 따르는 삶이고, 동일하게 주님의 집에 들어가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영원히 누리게 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지금에도 계속되는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감사하며 누리면 됩니다. 죽음에서 승리하시어 영원한 삶으로 초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면 됩니다. 이 모든 은혜를 앞으로도 계속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전심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