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성경의 괴리 속에 놓인 신앙

현대 그리스도인에게 던져진 질문

by 한신자

역사와 성경의 괴리에 대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성경, 특히 구약 내용을 검증하기 위해 신학자들의 여러 시도들이 있어 왔습니다. 그 결과 현재까지, 유다 왕국의 멸망과 왕국의 지도층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사건(바빌론 유수) 전후의 성경내용은 당대 주변의 사료와 교차검증이 가능하여 역사적 기록물로서 비교적 쉽게 받아들여집니다만, 창세기와 출애굽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난항을 겪게 됩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집트에서 엄청난 규모의 이스라엘 민족이 탈출합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문헌과 고고학적 사료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기록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이야기, 요셉과 아브라함의 이야기, 바벨탑과 노아의 이야기 또한 모티브가 되는 신화적 내용과 정황이 몇몇 있으나, 확실하게 증명되었다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구약성경 자체의 내용들도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구약의 여러 난제들-가인은 누구를 두려워한 것이었으며, 아브람에게 말씀하신 출애굽 시기와 실제 출애굽한 시기가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고, 모세 5경의 저자가 모세 한 명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등-은 제가 어릴 적부터 믿었던 성경의 권위를 조금씩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과거에 있었던 역사이며 실제 일어난 사실이라 믿을 수 없는 정황들 속에 고민하던 저는, 이런 고민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제 믿음이 굳건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 대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실은, 성경저자에게 과학과 역사를 기록하려는 의도가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들 속에서 의미에 집중하는 것처럼, 고조선 신화를 당대에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의 갈등이 있었다고 해석하는 것처럼,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어떻게 구원해 나가는지를 집중적으로 기록한 여러 책의 모음집이라는 것입니다. 이 목적에 집중해서 성경을 읽어내리면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 하나님과 세상 사이의 관계 이외의 부차적인 것들은 말 그대로 '부차적'이 됩니다. 오히려 기나긴 시대와 수많은 저자들의 기록 모음집에서 모순된 지점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그 기록의 진위를 크게 의심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정 한 사람이 전부를 자기 입맛에 맞게 편집하지 않았냐고 말입니다.

성경이 놀라운 점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비록 다양한 저자의 다양한 시대, 다양한 상황과 환경의 한계로 인해 기록의 모순점이 왕왕 발견되지만, 그들이 말하고 노래하는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만큼은 동일합니다. 이 기적과도 같은 부분 때문에 저는 성경을 믿는 확신이 자라나게 되는 경험을 합니다.


성경의 목적을 재발견함으로 얻게 된 확신과는 별개로 역사와 성경의 괴리를 이해하는 지점은, '지금까지 발견된 고고학적 사료와 역사적 사실은 완벽한 것이 아니다'라는 부분입니다.

1900년대 이전까지 중국의 상나라(은나라)는 전설상의 나라였습니다. 상나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갑골문이 발견되자 비로소 전설에서 역사로 편입되게 됩니다.

근래에 다윗의 도성이 발굴되기 전까지 고고학에서 다윗시대의 기록은 신화나 전설의 어느 지점에 있었습니다.

고고학은 실존했던 유물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추론과 추측 또한 크게 작용하는 학문입니다. 성서고고학에 있어서도 최대주의(성경을 문자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외의 것을 참고자료로 여기는)와 최소주의(성경을 참고자료로 보고 근동에 출토되는 사료를 일차적으로 생각하는)가 있어서 이 중 특정 주의로 해석하면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소주의 경향의 학자는 성경에 유일신관이 들어오게 된 게 바벨론의 조로아스터교 영향 때문이다라고 해석한다면, 최대주의 경향의 학자는 이집트 아크나톤의 유일신관에 영향을 받은 모세(혹은 모세 5경의 바탕이 되었던 문헌저자) 때부터 유일신관이 있었다고 해석합니다.


더 나아가 사람의 불안과 오만이 이런 괴리를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이해되지 않고 설명되지 못하는 미지가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견딜 수 없는 인간이, 미지가 행한 행적을 이해되는 범위로 끌어내리려는 노력이 담겨있지 않나 싶습니다. 미지의 신을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그 미지를 정복하려는 오만이 어쩌면 역사와 성경의 괴리를 더욱더 벌리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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