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분들을 위한 3줄 요약]
1.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고정관념이 있어서 내가 상상하는 하나님을 믿는 경우가 많다.
2. 내가 상상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진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초월이 필요하다.
3. 초월은 자기 부인과 더불어 성령과 말씀에 의지하여 실천하는 삶에서 이루어진다.
최근 들어 초월이라는 단어를 많이 접합니다. 특히나 니체가 제시한 초월하는 사람(Overman, 위버멘쉬, 신으로 표상되는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고 실존적 자신과 허무를 긍정적으로 수용하여 극복한 사람)에 대한 심상이 제게 계속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이든 다른 매체든) 초월이라는 단어가 들리면 제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니체가 떠오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정관념은 적과 아군을 간단명료하게 판별하는 생존능력입니다만, 자동적으로 발휘되는 이 능력으로 인해 우리는 많은 경우, 아주 쉽게 편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사람의 편견에 대한 사로잡힘은 '내가 믿는' 하나님도 예외가 아닙니다. 바리새인을 생각하면 아주 쉬울 것입니다. 그들은 정말로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수많은 부가적인 율법을 만들고 준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외식하는 자들'이라 칭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믿는'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생각한, 그러나 실제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말씀의 우상을 숭배한 것입니다.
[사 45:15-16]
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16 우상을 만드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며 욕을 받아 다 함께 수욕 중에 들어갈 것이로되
우리들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람이 사람인 이상 끊임없이 고정관념을 가지고 편견을 쌓아나갑니다. 사람인 이상 나무에 달린 뱀의 구원이 필요하고, 그것을 우상화하는 연약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숨어 계시고, 그래서 니체는 하나님을 의지하나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세대를 향해 '신은 죽었다' 외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내가 믿는' 신이 죽은 자리에 허무를 초월한 인간상, 일종의 허무를 이길 가이드라인인 '위버멘쉬'를 제시할 수밖에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니체의 극단적인 도전과 처절한 실패를 답습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 나의 우상, 나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무너뜨릴 분이 이미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무너진 내게 덮쳐올 허무와 혼돈을 대적할 말씀이 육신 되어 앞길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리어 허무와 혼돈의 광야로 나가셨고, 그곳에서 말씀으로 승리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결국 그리스도인의 초월은 성령을 따라 살아있는 말씀으로 사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여 그 발자취를 추종하는 삶입니다. 이런 삶 가운데 우리는 비로소 숨어있는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며, 이런 경험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더욱더 깊어져 나갑니다.
이런 놀라운 인도하심, 예수 그리스도가 시작한 사람의 초월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