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역설
사탄의 기원에 관해 '원래 사탄은 천사였으나 타락한 존재이다'라는 것을 거의 정설로 받아들입니다. 성경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가톨릭 전승에서 사탄은 본디 천사였으며, 하나님의 가장 가까이서 그의 영광을 노래하던 천사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의 자리를 찬탈하기 위해 반역하였고 타락하여 추방당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우리가 정설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이 안에 성경의 원리가 녹아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 예수전도단 대구지부 예배를 드리며 신명기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레 16:23-24]
23 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고
24 거룩한 곳에서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대속죄일날 대제사장은 가장 거룩한 곳인 지성소로 들어갔다 나옵니다. 지성소에서 나올 때, 대제사장은 들어갈 때 입었던 옷을 벗고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고 나옵니다. 더 나아가 그는 백성과 자신을 위해 속죄의 번제를 드립니다.
이 부분이 참 흥미롭습니다. 대제사장은 거룩한 지성소로 들어가기 위해 가장 먼저 속죄제를 드립니다. 그래서 지성소로 들어가기 직전에 제의의 상태로 보면 죄가 없는 정결한 상태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성소로 들어갔다 나오는 이후, 대제사장은 속죄의 번제를 드려야 할 만큼 죄가 있는 부정한 상태로 바뀝니다.
이와 관련되어 에스겔서에 이유가 설명되어 있는데,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겔 44:19] 그들이 바깥뜰 백성에게로 나갈 때에는 수종 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지니 이는 그 옷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라
쉬운성경을 보면 이 구절이 더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겔 44:19 쉬운성경] 그들이 백성들이 있는 바깥뜰로 나갈 때는 나를 섬길 때 입던 옷을 벗어서 구별된 방에 두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옷 때문에 백성이 해를 당하지 않게 하여야 한다.
대제사장이 지성소로 출입하는 거룩한 옷을 입고 백성 앞에 나서면 백성이 해를 입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부정한 백성이 거룩한 옷에 닿는 즉시 죽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거룩하다 칭했기에 거룩하게 여김 받은 옷을 백성들이 '그 자체가 거룩하여 지성소 출입이 가능한 옷'이라 착각하여 우상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번째 이유는 거룩한 옷을 입는 대제사장에게도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대제사장은 지성소를 나오는 즉시 속죄의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은 본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지성소까지의 출입을 허락받은 것이지, 그 자체가 거룩한 존재는 아닙니다. 그러나 지성소에서 속죄를 진행하고 나오는 순간부터 부정한 유혹이 그의 마음을 움켜쥡니다. '다 나의 공로다. 내 덕분에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대속을 할 수 있게 된다. 내가 거룩하기에 선택받았고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내게 주어졌다.'
이런 속삭임은 옷을 벗고 속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금방 사라집니다.
"너는 원래 부정한 사람이다. 내가 허락한 거룩한 옷을 입었기에 나의 전적인 은혜로 너는 지성소 출입이 가능해졌다. 그러니 이제 옷을 벗고 교만해진 네 마음을 속죄하여라."
우리가 일상 속에서 누리는 모든 일들이 이와 같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행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 하나님의 허락하심 안에 있는데,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공로마저 내 것으로 하려는 욕심이 우리를 쥐고 흔드는 경우가 아주 많이 있습니다. 이것에 아주 쉽게 흔들리는 우리는 주어진 것에 대해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 당연한 것,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왜곡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일수록 좋은 말을 경계하고 고난과 고통을 친구 삼아 곁에 둡니다. 하나님은 당연한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도록 기꺼이 시련을 그리스도인에게 허락하십니다.
가장 거룩한 천사장의 직위에서 사탄이 탄생했고, 가장 하찮은 말구유의 요람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가장 용모가 뛰어났던 사울왕은 하나님이 떠나갔고, 가장 보잘것없던 다윗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습니다.
이런 신앙의 역설을 기억하며 오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