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주님, 주님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내가 마땅히 가야 할 그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님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
《시편 25편 4~5절》
일상생활을 포함한 신앙생활 전체에서 가장 어려운 도전이 '주님이 보여주실 길을 기다려라'가 아닐까 합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이유 중에서 '내 뜻대로 하고 싶다'는 것이 가장 큽니다만 때로는 상황의 긴급함과 주변의 성급함에 못 이겨 먼저 선택하고는 합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부분에서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 하나님이 보여주실 길을 끈질기게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움직입니다.
주의할 점은 기다리라는 오늘의 말씀을 게으름이나 우유부단함을 합리화하는 데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잠언을 위시한 많은 말씀이 근면과 성실을 강조하고 있고, 데살로니가후서에는 바울이 게으른 자들을 향해 강하게 권면하는 말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살후 3:10, 새번역] 우리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일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 하고 거듭 명하였습니다.
또한 오늘 말씀의 기자인 다윗이 기다렸던 주님의 길은 예수님이 명확하게 가르쳐주셨습니다.
[마 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 좁은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길은 '남에게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며, 예수님은 이것을 확장하여 원수까지 사랑하라, 세상 모두에게 당신의 사랑을 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며 세상 모두를 사랑하는 길은 너무도 무궁무진합니다. 나의 성품과 상황과 은사로 한정해도 수없는 길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길 앞에서 아무리 주님의 음성을 기다려도 '이곳으로 나아가라!'라며 명확하게 가르쳐주는 목소리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임의로 선택해서 걸어갑니다. 우리가 애쓰는 사랑의 방식이 형통하게 이어지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그 길에서 좌절과 낙심을 경험합니다.
저는 이 부근, 그러니까 좌절과 낙심의 순간에 비로소 주님의 뜻을 구하는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정말 협소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셔서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여호수아 1장 9절) 다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없는 길로 걸어갈 때에 주님은 우리를 막으십니다.
그래서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끊어진 것만 같을 때, 우리는 멈춰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려야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길 원하시는지, 아니면 다른 길로 돌아가라는 말씀이신지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합니다.
'이 길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해 두신 길이야. 그래서 이 길에서의 실패는 내 인생의 끝이야'라고 단정 짓지 말자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이 길을 가라고 분명 말씀하셨더라도, 이 길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실패의 경험인지 아니면 완주의 경험인지는 하나님만 아십니다. 땅만 보면서 길을 가지 말고 멈춰 서서 나를 떠올릴 수 있는 하늘을 바라보라는 뜻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이 길 끝에 다다를 목적지가 아니라 너와 함께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고 말씀하시는지 누가 알겠느냐는 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건 우리가 선택한 길이 아닙니다. 내 실패와 낙망과 좌절 또한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내주하시는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잠깐이라도 멈춰 섭시다. 말씀 앞에서 우리의 모든 계획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한분만 구합시다. 어딜 어떻게 가든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깁시다. 이런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