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게 살려고 합니다

시편

by 한신자
그러나 나는 깨끗하게 살려고 하오니, 이 몸을 구하여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 내가 선 자리가 든든하오니, 예배하는 모임에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
《시편 26편 11~12절》


개신교에 관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지점은 '오직 은혜'에서 비롯되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비아냥댑니다. '하나님이 뭐든 다 용서해 준다며? 그럼 마음껏 죄지으면서 살면 되겠네? 그래도 넌 천국 가잖아.' 그러나 이것은 정말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깜깜한 방 안에 있는 아이를 떠올려 보면 좋겠습니다. 이 아이는 깨끗한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정리할 능력조차 없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방은 더 어지러워집니다. 방 안이 어지러워질수록 아이는 죽음과 가까워집니다. 물리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엔트로피가 증가되는 방향으로 방의 상태가 진행됩니다. 하지만 빛이 없어 이런 방의 상태를 아무도 깨닫지 못합니다.

이런 방에, 아버지가 들어와 빛을 밝힙니다. 아버지의 빛으로 드러난 방 상태는 너무도 끔찍합니다. 그럼에도 깨끗한 아버지는 당신께서 더러워지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다가가 오물로 뒤덮인 아이의 몸을 깨끗하게 씻기고, 방의 물건을 하나씩 정리하며 아이에게 물건의 정위치와 정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줍니다. 이제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하기에 깨끗함을 누리게 됩니다. 아이의 실수로 어지럽혀질 수는 있지만 아버지가 금방 아이와 함께 방을 정리하기 때문에 아주 일시적일 뿐입니다.

아이가 눈을 감고 자기 멋대로 하려고 들지 않는 한, 아이가 밝은 빛을 피해 어두운 방으로 찾아 떠나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 자신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이 말을 풀어서 이해하면 이렇게 됩니다. '나는 내 안의 죄성으로부터 자유하여 깨끗하게 살기 원하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제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악으로부터의 구원을 갈망합니다. 이 구원의 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구원의 갈망은 방을 청소하는 의도가 다시 어지럽히려는 데 있지 않는 것과 같이, 다시 죄를 짓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전보다 바르게, 이전보다 깨끗하게 살기 위한 치열한 목마름에서 비롯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갈망하던 깨끗함을 경험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넘어짐을 경험하고 방 안을 다시 어지럽힐지라도 깨끗함을 누린 기억을 따라 예수님을 의지하여 다시 방을 청소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 기자의 표현을 따르자면 '다시 든든한 자리에 서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저를 향한 음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음성을 여러분들에게 나누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은혜를 갈망하는 자야, 나에게로 나아와 더러워진 네 모든 것을 깨끗하게 씻어내자. 나는 네가 선 그 깨끗하고 탄탄한 자리에서 부르는 찬양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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