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두려워하랴?

시편

by 한신자
주님이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신데,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이 내 생명의 피난처이신데,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랴?
《시편 27편 1절》


상호 간의 신뢰가 무너져가고 있는 지금의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를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바라봅니다. 저 사람이 나를 해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관계가 없는 사람과 더더욱 관계하기 어렵고, 사람들 앞에서 내 실수가 조리돌림 당할까 무서워 사람들 앞에서의 나와 혼자 있는 나 사이의 괴리가 점점 커져갑니다. 모임은 사람의 두려움으로 고통을 받고, 개인은 고립됨으로 깊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심지어 무엇보다 친밀해야 할 가족관계에까지 두려움과 무서움이 침투해서 관계를 파괴해 나갑니다.

진솔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 드러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 가운데 우리는 현재를 살아갑니다.


오늘 시편 말씀은 이런 현실을 극복할 방안을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빛 되시고, 구원되시며, 피난처 되신다는 사실을 통해서 말입니다.


세상 사람은 사람의 눈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눈을 두려워합니다. 빛 되신 주님의 눈은 마음까지 통찰하시기에 우리의 모든 것은 그분의 감찰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눈빛에 압도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사람의 눈이 두렵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눈이 없는 곳에서 불법과 죄악을 품지만, 그리스도인은 항상 하나님 앞에 자신을 세워(코람데오) 순결함과 순전함을 추구합니다.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소망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또한 사람이기에, 사람의 눈을 하나님보다 두려워하는 자신을 매번 경험합니다. 우리는 너무도 연약하여 코람데오 앞에서 절망하고 낙담하는 자신과 마주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창세부터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구원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어서 우리의 연약함을 완전히 이해하십니다. 그분은 이해에서 멈추지 않고 인간의 연약함에서 발생하는 모든 책임과 연약함 그 자체까지 대신 짊어지시기로 결정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낙심하고 절망하는 우리 곁에 다가오셔서 넘어진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코람데오로 설 수 있는 담대함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성령의 임재가 있는 생명의 피난처로 나아갑니다. 놀라운 것은, 이미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재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무서워함 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는 이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성령이 이미 우리 안에 좌정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임재를 누리는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우리는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하나님 앞에 설 그날까지 우리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두려워할 하나님만을 두려워합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합니다.

더 나아가, 성령의 임재로 피난처 그 자체가 된 우리는 세상의 두려움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피난처 안으로 초대합니다. 서로에게 서로를 내어주신 삼위의 하나님처럼, 우리에게 독생자를 내어주신 하나님처럼, 성령 안에서 우리 또한 두려워하는 이웃에게 우리를 내어줍니다.


성령의 임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동행 안에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오늘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전심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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