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나의 대적자들, 나의 원수들, 저 악한 자들이, 나를 잡아먹으려고 다가왔다가 비틀거리며 넘어졌구나.
군대가 나를 치려고 에워싸도, 나는 무섭지 않네. 용사들이 나를 공격하려고 일어날지라도, 나는 하나님만 의지하려네.
《시편 27편 2~3절》
대통령 파면이 결정된 날입니다. 이 소식이 기쁜 분들에게도, 슬픈 분들에게도, 별 감흥이 없는 분들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평강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내 대적자, 내 원수, 악한 자들로 여기지 않는 태도입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편에도 그리스도인이 있고, 저편에도 그리스도인이 있으며, 우리는 모든 것을 초월하여 연합된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강력한 힘도, 현재의 일도, 장래의 일도, 높음도, 깊음도, 그 어떤 피조물도 주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오직 유일한 지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은 의지하던 것을 상실하면 비틀거리며 넘어집니다. 돈, 건강, 직장, 가족 등 저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면 사람은 극심한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동일한 사람이기에 상실의 아픔을 느끼고, 겁박하는 자들에게 분노하고, 내일 뭐 먹고살지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의 차이는 당면한 현실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통해 드러납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실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오늘 당장 해고 통보를 받고 직장을 떠나게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런 상황에 처한 나에게 당장 내일 뭐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막막함이 몰려옵니다. 이 막막함을 잊기 위해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막막함을 원동력 삼아 내일의 일을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렇게 다시 일을 시작해도 내일에 대한 막막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실직에 대한 고통은 아주 찰나의 상태변화로부터 오는 안타까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어제까지 아름다움을 즐겼던, 그러나 오늘은 완전히 저버린 벚꽃나무를 보는 것과 닮아 있습니다. 분명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일이 봄이 끝났다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년의 봄을 맞을 수 없다는 절망으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년에 반드시 찾아오는 봄을 알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내년에 찾아오는 봄과 피어나는 벚꽃을 우리는 반드시 누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리스도인은 지금의 끝에 절망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시편 기자의 태도가 바로 이런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영원한 하나님께 완전히 의탁해 버린 그리스도인은, 일시적이고 상대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영원하고도 절대적인 관점으로 계속해서 나아갑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금에 분노하고 절망하고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하나님과 이웃을 믿고 소망하고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의지합시다. 하나님의 영원에 우리를 의탁합시다. 그래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임을 발견합시다. 나와, 내 가족과, 내 이웃과, 내 원수까지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