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웃음을 당할 때

느헤미야

by 한신자
우리가 성벽을 다시 쌓아 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산발랏은, 몹시 분개하며 화를 내었다. 그는 유다 사람을 비웃으며, 자기 동료들과 사마리아 군인들이 듣는 데에서 "힘도 없는 유다인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거냐? 이 성벽을 다시 쌓는다고? 여기에서 제사를 지내겠다는 거냐? 하루 만에 일을 끝낸다는 거냐? 불타 버린 돌을 흙무더기 속에서 다시 꺼내서 쓸 수 있다는 거냐?" 하고 빈정거렸다.
《느헤미야 4장 1~2절》


성벽을 건축하는 중의 일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재건된다는 소식을 들은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은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을 비웃습니다. 이에 느헤미야는 분노하여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저주하는 장면이 오늘 말씀에서 나타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느헤미야와 직책이 동일한 총독 산발랏의 행태가 이해하기 어려워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북쪽, 암몬은 이스라엘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아주 가까웠던 만큼 서로에 대해 역사적, 민족적 적대감이 쌓여왔을 것입니다. 느헤미야 1장에서 느헤미야가 들었던 이스라엘인들이 당한 환란과 능욕이 이들로부터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성벽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주변 민족들이 더는 이스라엘을 약탈하지 못한다는 의미였기에, (아마도 약탈로 이득을 얻었던 사마리아 총독인) 산발랏은 이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거기다 산발랏은 중앙에서 임명한 총독인 느헤미야를 해하고도 무마시킬 수 있는 정치적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고, 대제사장과 사돈이 될 만큼의 이스라엘과의 종교적 유착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산발랏의 계획 속에 자신이 직접 사마리아를 다스리고, 유다 지방은 결혼동맹으로 대제사장을 통해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지 않나 싶습니다. 느헤미야의 등장과 성벽건축은, 산발랏이 마음에 세워두었던 위와 같은 계획이 어그러지는 것을 뜻하였습니다.


어쩌면 느헤미야의 동포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가 그렇지 못한 자신과 비교당하여 느헤미야의 계획을 싫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치적, 민족적 이유를 떠나서 자신들도 아시리아에 짓밟혔는데, 이스라엘 민족만 다시 구심점을 찾고 재건되는 것 같아 배가 아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산발랏은 느헤미야의 성벽재건 계획을 공개적으로 비웃었습니다. 저는 산발랏의 비웃음에 대항하는 느헤미야의 기도가 참 좋습니다. '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가 아니라, '날 괴롭히는 저놈들을 주님께서 똑같이 괴롭혀 주십시오. 아니 더 크고 아프게 괴롭혀 주십시오.'라는 솔직함 때문입니다.

[느4:4, 새번역] "우리의 하나님, 들어주십시오. 우리가 이렇게 업신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에게 퍼붓는 그 욕이 그들에게 되돌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고, 남의 나라로 끌려가게 하여 주십시오.


살면서 미움받지 않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유 있는 미움보다 이유 없는 믿음이 너무 만연한 세상입니다. 오늘 느헤미야의 기도는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절실하지 않나 싶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분노에 찬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게 큰 위로가 됩니다. 내가 처한 억울한 상황들, 나를 향한 맹렬한 비난들을 모두 하나님께서 아신다는 게 충분한 위안으로 다가옵니다.

모두가 날 좋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일 안에서도 우리는 많은 장애물과 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느헤미야처럼 솔직한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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