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

느헤미야

by 한신자
또 더러는 이렇게 탄식한다. "우리의 몸이라고 해서, 유다인 동포들의 몸과 무엇이 다르냐? 우리의 자식이라고 해서 그들의 자식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그런데도 우리가 아들딸을 종으로 팔아야 하다니! 우리의 딸 가운데는 벌써 노예가 된 아이들도 있는데, 밭과 포도원이 다 남의 것이 되어서, 우리는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다."
《느헤미야 5장 5절》


산발랏과 도비야로 대표되는 외부의 방해 속에서, 이스라엘 내부의 불만 또한 터집니다. 귀족과 관리자들이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부과하여 백성의 소유물뿐만 아니라 자식까지 노예로 팔아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백성이 돈을 빌려야 했던 이유는 페르시아 왕이 부과한 세금을 납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이스라엘인 모두를 불러놓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먼저 솔선수범할 테니 이자 받지 말고, 저당 잡은 백성의 땅을 돌려주라고 요청합니다. 더 나아가 제사장들이 보는 앞에서 돈놀이한 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도록 서약까지 받아냅니다.


[느5:14, 새번역] 나는 아닥사스다 왕 이십년에 유다 땅 총독으로 임명을 받아서, 아닥사스다 왕 삼십이년까지 십이 년 동안 총독으로 있었지만, 나와 나의 친척들은 내가 총독으로서 받아야 할 녹의 혜택을 받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습니다. 총독의 녹을 추구 할수록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이 전가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도 하고, 그가 총독이 된 목적은 자신의 이윤추구가 아니라 예루살렘의 성벽공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유다총독(예후드 메디나타)에 대해 찾아보니, 유다 귀족들 중에서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총독의 녹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는 외부사료에서 찾을 수 없었으나, 15, 16절 말씀으로 유추하자면 수조권 형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따라서 녹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 땅의 세금을(페르시아에 보낼 것을 제하고) 받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추측합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귀족 출신으로 총독의 녹을 받지 않고도 충분한 생활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의 결정이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귀족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이자를 솔선수범하여 그만두었고, 여기에 더해 땅과 집을 돌려주기까지 합니다. 더군다나 총독이기에 책임저야 할 사람들이 많았습니다(17절 이하). 그는 분명 성벽 재건 사업을 위해 경제적으로 큰 위험을 감수하였습니다.


[느5:15] 나보다 먼저 있었던 총독들은 백성에게서,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을 그들에게서 빼앗았고 또한 그들의 종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으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고

느헤미야의 이런 행적을 묵상하며 그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라는 고백에 정말로 적합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하는 감동이 몰려왔습니다.

동포끼리의 이자는 모세오경부터 금하던 행위였습니다. 땅과 집을 돌려주는 것에서 희년의 정신이 보였습니다. 그는 이 모든 일들의 목적을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도성 재건 사업을 위해 이 모든 것들을 감당하였습니다. 학개서의, 귀환한 이스라엘인들이 성전 재건을 중단한 이유와 대비되어 느헤미야의 이런 모습이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느헤미야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통해 오늘 저의 모습을 점검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자랑하는 신앙생활을 해왔지는 않았는지, 내 이득을 위해 타인의 손해를 당연하게 여겼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봅니다. 그리고 주님께 나아가 회개합니다.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의 손해까지 감수할 수 있는 담대함을 허락해 달라 간구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꺼이 내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그리고 타인의 손해를 내것처럼 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전심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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