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모든 백성이 한꺼번에 수문 앞 광장에 모였다. 그들은 학자 에스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지고 오라고 청하였다.
일곱째 달 초하루에 에스라 제사장은 율법책을 가지고 회중 앞에 나왔다. 거기에는, 남자든 여자든, 알아들을 만한 사람은 모두 나와 있었다.
《느헤미야 8장 1-2절》
신년(일곱째 달이 이스라엘의 신년입니다)이 시작되고, 성일(나팔절)을 시작으로 초막절이 지켜집니다(8장). 에스라와 레위사람들이 율법을 번역하여 낭독하자, 죄의 찔림이 있었던 회중은 슬퍼하여 웁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성일이 슬퍼하고 울기에는 적절한 날이 아니기 때문에 먹고 마시며 즐겁게 보내라고 이야기합니다.
[느8:9, 새번역] 백성은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서, 모두 울었다. 그래서 총독 느헤미야와, 학자 에스라 제사장과,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이 날은 주 하나님의 거룩한 날이니, 슬퍼하지도 말고 울지도 말라고 모든 백성을 타일렀다.
그렇다면 슬퍼하고 울어야 하는 날은 언제입니까? 그 날은 9장에 나와 있습니다.
[느9:1-2, 새번역]
1 그 달 이십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서 금식하면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먼지를 뒤집어썼다.
2 이스라엘 자손은 모든 이방 사람과 관계를 끊었다. 그들은 제자리에 선 채로 자신들의 허물과 조상의 죄를 자백하였다.
헌데 날짜가 이상합니다.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날이 24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속죄일은 신년의 10일에 지켜지기로 레위기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레23:27, 새번역] 일곱째 달 열흘날은 속죄일이다. 너희는 이 날에, 거룩한 모임을 열고 고행하며, 주에게 살라 바치는 제물을 바쳐야 한다.
여기서 몇 가지 추측을 하였습니다.
1. 8장 초막절에 관한 구절에 새번역을 보면 '발견하였다'라고 되어 있어, 아직 대속죄일이 발견되기 전이며, 따라서 24일 날 모인 것은 대속죄일이 아니라 율법의 찔림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2. 당시 유월절이나 초막절에 비해 대속죄일이 크게 주목할만한 절기가 아니었으며, 따라서 10일에 거행된 대속죄일은 생략되고(느헤미야서에 기록되지 않고), 24일 날은 대속죄일과 상관없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모였다.
3. 9장 끝에 조상의 죄와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언약을 세워 지도자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서명하는 장면이 있는데, 당시 지성소에 언약의 증거인 언약궤가 없었기에 지성소의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지성소가 필요한 대속죄일이 지켜지지 않았다. 대속죄일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언약 갱신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었기에 조상의 죄와 자신의 죄를 자복하여 언약에 인봉하는 장면이 9장에 나타난 것이다.
=> 지성소에 출입할 대제사장이 있었다는 점에서 무리한 추측이기는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인들에게 조상들의 죄의 여파가 미치고 있었습니다. 성전과 성벽을 완공하며 이스라엘인들은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유다 왕국은 멸망당해 여전히 역사의 뒤안길에 있었고, 이제는 언어까지 달라져 율법을 번역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 그 신실하신 언약의 말씀을 다시 붙잡습니다. 조상들의 죄를 자복함으로, 비록 언약궤는 사라졌으나 조상들이 가졌던 언약의 약속을 붙들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께 조상의 죄와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 언약에 당시대의 지도자 이름을 서명함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받아들였습니다.
[느9:16, 새번역] 그러나 우리 조상은 거만하여, 목이 뻣뻣하고 고집이 세어서, 주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연좌제가 불합리한 지금의 세상에서 이스라엘의 이런 모습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아니, 도대체 조상의 죄와 지금의 내가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강하게 반문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느헤미야의 본문을 살펴보며 이렇게 적용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과거 내가 행했던 모든 공과 과를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지금 내게 주어진 현실은 과거 조상들의 공과 과의 영향이 작용하기에 지금의 내가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라고 말입니다.
분명 조상의 잘못에 나의 지분은 없습니다. 조상들의 죄를 내가 책임진다는 것이 억울하고 불합리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태초부터 지금까지의 쌓인 시간이, 인간의 역사가 지금의 나를 지탱하고 있기에, 그리고 분명 과거의 죄로 인해 돌고 돌아 내가 상처받았기에, 나의 상처를 직면하고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의 죄뿐만이 아니라 조상들의 죄와 우리의 죄를 자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이런 작업은 지금 내가 후대에 죄를 넘겨줄 것인가, 사랑을 넘겨줄 것인가를 계속해서 질문하게 만듭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내가 회복되기 위해서 우리는 나와 조상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죄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나님 앞에 자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복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회복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