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규례도 정하였다.
"하나님의 성전 비용으로 쓰도록, 우리는 해마다 삼분의 일 세겔씩 바친다.
이것은, 늘 차려 놓는 빵과 규칙적으로 드리는 곡식제물과 규칙적으로 드리는 번제와 안식일이나 초하루나 그 밖에 절기 때에 드리는 제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속하는 속죄물과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는 모든 일에 쓸 것이다.
《느헤미야 10장 32-33절》
성전과 성벽의 건축이 허용되었을 뿐이지, 이스라엘은 여전히 페르시아 제국의 속주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총독의 녹을 받지 않는다 결단했지만, 그 부분을 빼고도 여전히 제국에 납부해야 할 세금이 있었습니다.(페르시아에 납부한 구체적인 조세액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가 그 어느 제국보다 부유했다고 하는 역사적 증언을 볼 때, 피정복민의 생활이 세금으로 팍팍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느헤미야 5장 참조)
이런 상황에서 율법에 명시된 납부의 항목들을 전부 적용시키기란 정말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나 첫 소산물 등은 지키되, 성전을 위한 세금 부분에서 모세오경이 규정한 해마다 반 세겔이 아닌 해마다 삼분의 일 세겔을 드리도록 유동적으로 조정합니다.
[출30:12-13, 새번역]
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를 세어 인구를 조사할 때에, 그들은 각자 자기 목숨 값으로 속전을 주에게 바쳐야 한다. 그래야만 인구를 조사할 때에, 그들에게 재앙이 미치지 않을 것이다.
13 인구 조사를 받는 사람은 누구나 성소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내야 한다. 한 세겔은 이십 게라이다. 이 반 세겔은 주에게 올리는 예물이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며 제가 처음 월급 받은 날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월급 받기 전에는 '받으면 무조건 모두 드린다', '안되더라도 절반은 꼭 드린다' 다짐했었으나, 막상 받고 생활을 꾸려나가다 보니, 십일조도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십일조만 어찌어찌 드릴 수 있었는데, 저의 이런 모습에 비추어 보았을 때 오늘 이스라엘의 결단이 격려와 도전으로 다가옵니다.
일을 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돈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아, 이건 내 돈이 아니라 저 사람을 위한 돈이구나'하고 선뜻 내어 드립니다만, 때로는 '내 돈인데...'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 돈이면 내가 가지고 싶은 물건을 살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왜 포기해야 합니까'라고 하나님께 따지기도 합니다.
한탄 섞인 제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제가 지금껏 받아 누린 은혜를 생각나게 하십니다. 소중한 공동체를 통해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기억들, 개인적인 어려움 가운데서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받았던 기억들, 주고받는 사랑을 통해 감동으로 다가왔던 기억들을 하나님께서는 속속들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 자복하고 내 욕심보다 필요한 곳에 돈을 흘려보냅니다.
느헤미야 시대, 성전과 성벽이 세워짐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날 우리의 공동체가 세워지고 유지되는 것을 통해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 '세워지고 유지되는 것'에 우리 자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갑과 가치가 동일한 의미를 가지게 된 이 시대에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여, 거기에 나의 가치를 완전히 내어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