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느13:5, 새번역] 그런데 그가 도비야에게 큰 방 하나를 내주었다. 그 방은 처음부터 곡식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에게 주려고 십일조로 거두어들인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제사장들의 몫으로 바친 제물을 두는 곳이다.
이스라엘은 언약을 갱신하였고, 성벽 봉헌식 이후 언약의 율법을 잘 준행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돌아갔다 오는 기간(1년 정도로 추측)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해 성전 뜰 안에 있는 방을 내어줍니다. 느헤미야는 이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여 방을 정결케 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느13:28, 새번역]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인 요야다의 아들 가운데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기에, 나는 그자를, 내 앞에서 얼씬도 못하도록 쫓아냈다.
호론 사람 삼발랏과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후손들이 결혼할 만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삼발랏과 도비야는 아주 친밀한 관계였기에, 도비야 역시 일리아십과 친했으리라 유추할 수 있습니다.
도비야는 또한 이스라엘식 이름이었습니다.(역대하에 레위인들 이름 중 도비야가 있습니다)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 조카 롯의 자손이었습니다. 신명기 2장의 말씀을 살펴보면 이스라엘과 암몬은 퍽 가까운 사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 당시 사건으로 인해 이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느13:1-3, 새번역]
1 그 날, 백성에게 모세의 책을 읽어 주었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2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맞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서, 우리가 저주를 받도록 빌게 하였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 저주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셨다."
3 백성은 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섞여서 사는 이방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두 분리시켰다.
여호와의 총회는 이스라엘 회중을 의미했고, 성전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추측합니다. 따라서 모압과 암몬을 분리한 3절의 말씀과 정확히 반대되는 일이 8-9절에 나타난 것입니다.
[느13:8-9, 새번역]
8 나는 몹시 화가 나서, 도비야가 쓰는 방의 세간을 다 바깥으로 내던지고,
9 말하였다. "그 방을 깨끗하게 치운 다음에, 하나님의 성전 그릇들과 곡식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다 놓아라."
결과적으로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개혁은 실패합니다. 이후 마케도니아 후신 왕조에 의해 성전은 모욕당하고, 성벽과 성전 전체가 결국 로마에 의해 파괴당합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저는 왜 느헤미야가 대제사장 엘리아십을 축출하지 못했을까 아쉬웠습니다. 아들 딸을 이방 사람(암몬과 모압 사람)과 결혼하지 말라고 했으니, 증손주인 엘리아십은 책임에서 면제되었다고 하기에는 율법을 너무 면피적으로 적용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대제사장의 권한을 이용해 암몬사람 도비야의 방까지 마련해 줍니다.
기름 부음 받았기에, 사울을 바라보는 다윗의 심정으로 엘리아십을 축출하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그가 상황적으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은 기록이 없습니다. 또한 엘리아십 때문에 이스라엘이 후대에 감당해야 하는 결과가 너무 컸습니다. 어쩌면 느헤미야는 현실적인 개혁 진행을 위해 정치적 타협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결과 느헤미야의 개혁은 실패로 끝났지만 말입니다. 마치 여호수아가 멸족하라는 족속을 조금 남겨두고 과업을 완수했을 때, 후대에 이르러 골리앗 같은 실패 사례가 등장한 것처럼 말입니다.
[수11:22-23, 새번역]
22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서는, 오직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을 제외하고는, 아낙 사람으로서 살아 남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23 여호수아는,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모든 땅을 점령하고, 그것을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을 따라 유산으로 주었다.
그래서 그 땅에서는 전쟁이 그치고, 사람들은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삼상17:4, 새번역] 블레셋 진에서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싸움을 걸려고 나섰다. 그는 키가 여섯 규빗 하고도 한 뼘이나 더 되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의 회개는 죄악의 뿌리가 아니라 단순히 잎사귀만 잘라내는 표면적인 회개가 아니었을까. 뿌리가 남아있어 다시 죄가 자라게끔 여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돌아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도 권면합니다. 아직 여러분 삶에서 남아있는 엘리아십이 있습니까?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이 남아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까지 하나님께 내어드립시다. 죄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해 버립시다.
오늘 말씀을 반면교사 삼아, 죄악 된 것에 조금의 여지도 남겨두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