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서에서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

에스더

by 한신자
왕이, 에스더 왕후가 뜰에 서 있는 것을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쥐고 있던 금 규를 에스더에게 내밀자, 에스더가 가까이 다가가서, 그 규의 끝에 손을 대었다.
왕이 그에게 말을 건네었다. "웬 일이오, 에스더 왕후, 무슨 소청이라도 있소? 당신에게라면, 나라의 절반이라도 떼어 주겠소."
에스더가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오늘 잔치를 차리고, 임금님을 모시고 싶습니다. 하만과 함께 오시면 좋겠습니다."
《에스더 5장 2-4절》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요청에 의해 금식한 지 삼일 후, 죽음을 각오하고 왕에게 나아갑니다. 왕은 에스더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여겨 규를 내밀어 용서합니다. 왕국의 절반을 주겠다(당시 이 지역의 관용구인듯합니다)는 왕 앞에 에스더는 하만과 함께 잔치에 오라고만 요청을 합니다. 왕은 에스더의 요청이 궁금해 하만을 급히 불러 잔치에 참석하고, 에스더는 다음 잔치 때 말해주겠다며 내일 다시 참석해 달라고만 이야기합니다.

잔치가 파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하만은 모르드개를 또 마주칩니다. 그러나 여전히 모르드개가 절하지 않자 크게 분노합니다. 그리고 집에서 아내와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자, 그들은 모르드개를 장대에 매달도록 왕에게 요청하라 말합니다.


5장을 전체적으로 묵상하며 저는 계속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렸습니다.

왕후라는 존귀한 자리에 있으나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 3일 만에 왕 앞에 나아간다는 것, 잔치에 모두를(원수인 하만까지) 초대한다는 것, 원수가 장대에 모르드개를 매달려한다는 것, 더 나아가 에스더가 한 영혼(모르드개)을 구원하고자 한다는 것과 한 영혼의 구원이 민족 전체의 구원으로 연결된다는 것, 차후에 하만의 장대가 완전히 역전된 용도로 쓰인다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합니다.(물론 알레고리적 해석이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야 함에도, 예수님이 생각나는 걸 어쩌겠습니까. I love Jesus.)


또한 본문을 살펴보며 왜 에스더 왕후가 바로 요청을 말하지 않고 잔치에 초대했는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앞에 두려워서 자신의 요청을 뒤로 미뤘다고 하기에는 이미 왕의 규를 잡는 순간 상황이 해소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에스더 왕후의 잔치가 에스더 1장의 잔치와 대비되는 성격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에1:12, 새번역] 그러나 와스디 왕후는 내시들에게 왕의 명령을 전하여 듣고도, 왕 앞에 나오기를 거절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화가 몹시 났다. 마음 속에서 분노가 불같이 치밀어 올랐다.

1장에서의 잔치는 왕이 왕비에게 거절당하는 잔치였습니다. 그러나 5장의 잔치는 왕비가 주도하여 왕과 대신이 참석하는 잔치였습니다. 여기에 어쩌면 에스더의 노림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에 거부당했던 왕의 요구를 충족함과 동시에, 왕을 안달복달하게 만들어 자신의 요청이 쉽게 승낙되도록 만드는 처신의 지혜가 잔치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더 나아가 에스더의 잔치를 기점으로 상황이 반전되는 것을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유월절 만찬이 겹쳐 보이며,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극적인 인도하심이 에스더의 행동 속에 녹아들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하나님이 등장하지 않으나 하나님이 보이는' 에스더서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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