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그분은 오셔서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분에게 평화를 전하셨으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양쪽 모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여러분은 외국 사람이나 나그네가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에베소서 2장 17-19절》
우리는 평화를 보통 갈등이 없는 상태로 이해합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서 평화의 상태를 이룩하기 위해 획일화되고 일치된 방향성을 추구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이는 2차 세계대전의 교훈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나치즘과 파시즘은 획일화된 국가가 어디까지 끔찍해질 수 있는가를 세계만방에 드러내었습니다.
이 일을 반면교사 삼아, 다양함과 평화를 결합하려는 무수한 노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결과 비례대표제, 다원화된 정당을 비롯해 시민단체와 이익단체의 탄생 등을 우리는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기대했습니다. 분명 서로 다른 가치를 가지고 치열하게 싸우겠지만, 한 사회와 한 국가로 공존하는 한 이 부딪는 힘들이 모여 평화와 발전을 향한 거대한 추진력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태초의 에덴동산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 안에 선악과도 만드셨고 뱀도 만드셨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사람에게 허락하신 이유가 인간으로 하여금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눈에 좋은 것을 넘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올바른) 자리까지 초대하시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담이 결국 자신의 눈에 좋은 선악과를 취해 하나님과 단절된 것처럼, 평화를 향한 추진력이 되어야 할 다양한 목소리가 단절의 담장이 되었습니다. 국가와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 탄생한 것들이 이제는 자기들에게 좋은 방향만을 고집하며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의 단절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 놓인 단절을 사랑으로 허무셨습니다. 이는 가까이 있는 유대인이나, 멀리 있는 이방인이나 모두에게 해당되는 평화의 복음입니다. 이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자기에게 좋은 방향으로 걸어가 서로를 원수로 여겼으나, 이제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고, 그렇게 올바른 방향을 걸어가는 이웃이자 동료이자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런 평화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내게 좋은 것이 옳고, 내게 나쁜 것이 틀린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옳음과 좋음을 구별하게끔 우리를 인도합니다. 사랑의 인도는 내 생각에서 벗어나 이웃의 좋음을 이해하게 하고, 우리 사회와 나라의 옳음을 생각하게 이끕니다.
세상 모두는 복음 안에서 서로 사랑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런 복음적 생각은 내게 좋아 보이고 좋은 것이 서로에게는 틀릴 수 있다는 성찰로 나아갑니다. 이는 상대를 용납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우리 모두를 다양함 속에서 하나 되는 평화로 초대합니다.
시작된 오늘,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와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을 원수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가족으로 함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