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세종대왕과 이순신은 구원을 받았나요?'
우리가 흔히 듣는 질문입니다. 불합리해 보이는 복음을 공격하기 위한 이런 질문을 바울 또한 율법에 대해 받았지 않나 싶습니다.
로마서 2장을 읽으며 우리는 두 사람이 바울에게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헬라인이 먼저 질문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럼 율법을 모르는 우리 조상들은 구원받지 못했습니까?"
유대인 또한 질문합니다.
"저들 조상들은 율법을 몰랐으니 구원을 받지 못했을뿐더러, 토라 율법을 지키지 않는 저들이 구원받았다고 하기 좀 뭐 하지 않습니까?"
바울은 이에 대해, 1장의 논지를 유지하며 유대인들을 엄하게 질책합니다.
[롬2:1, 새번역]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남을 심판하는 일로 결국 자기를 정죄하는 셈입니다. 남을 심판하는 그대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구원을 왈가왈부하는 일은 남을 심판하고자 하는 내 죄성이 발현된 상태이며, 이 죄성으로 결국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뒤이어 유대인들이 그토록 신뢰하는 율법의 기능을 설명합니다.
[롬2:12-13, 새번역]
12 율법을 모르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과 상관없이 망할 것이요, 율법을 알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을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헬라인의 질문에도 답합니다.
[롬2:14-15, 새번역]
14 율법을 가지지 않은 이방 사람이, 사람의 본성을 따라 율법이 명하는 바를 행하면,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율법입니다.
15 그런 사람은, 율법이 요구하는 일이 자기의 마음에 적혀 있음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들의 양심도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호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할례를 예시로 두 사람 모두에게 권면합니다.
[롬2:26-29, 새번역]
26 그러므로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율법의 규정을 지키면, 그 사람은 할례를 받지 않았더라도 할례를 받은 것으로 여겨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27 그리고 본래 할례를 받지 않았더라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이, 율법의 조문을 가지고 있고 할례를 받았으면서도 율법을 범하는 사람인 그대를 정죄할 것입니다.
28 겉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요, 겉모양으로 살갗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닙니다.
29 오히려 속 사람으로 유대 사람인 이가 유대 사람이며, 율법의 조문을 따라서 받는 할례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칭찬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유대인이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었기에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전적으로 구원을 결정하셨고, 그 이후 이스라엘에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율법은 심판의 기준이지 구원의 요건이 아닙니다. 이는 율법이 없는 이방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양심의 법은 선악과 이후로 부패하여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능력은 상실되었으나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지각하는 능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율법이 존재하냐 안 하냐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아 율법의 정신을 온전히 지키고 있냐라는 것입니다.
율법과 양심의 법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감히 변명하지 못합니다. 유대인이고 이방인이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별 다를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법의 심판 아래 놓인 세상 모두는 하나님의 구원이자 의로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분이 없었다면 우리는 모두 멸망할 자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어진 오늘 하루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확신을 신뢰하며, 마음에 할례 받은 대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께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처음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드리지 못한 것 같아 묵상과 따로 구분하여 정리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복음을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구원 문제에 대해 질문받습니다.
이에 대해 답은 명확합니다.
"구원은 저와 여러분이 정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도, 여러분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께서 정할 바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구원에 대해 확신할 따름이지, 타인 또는 조상의 구원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위로가 필요한 분이 있으시다면 이 밑의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개혁주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저로서는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입니다만, 잘못된 신학적 길로 빠질 수 있어 위로의 차원에서만 들으시기 바랍니다.
개혁주의 교회의 가르침은 아니지만, 가톨릭에는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바로 '익명의 그리스도인'입니다.
지리적, 시대적 한계로 인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실존적인 구원의 은혜를 누린 비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말로써, 복음과 율법이 아직 없었던 특정 세대 특정 지역에 하나님의 강권적인 구원의 은혜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하는 생각입니다.
또한 기독교가 동아시아에 처음 소개될 때, 복음을 지역 친화적인 언어로 소개하고자 하나님을 '천주(하늘의 주인)'로 소개하였습니다. 이 용어는 동아시아 상제 혹은 도덕적 질서의 주관인 하늘에 대한 개념을 엮은 것으로, 어떤 분들은 심지어 이것을 가지고 이미 고대부터 유일신 하늘님(천주)에 대한 신앙이 동아시아 안에 있었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그러나 이건 너무 나간 상상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