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2장의 질문에 뒤이어 3장에서 유대인은 바울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율법이 심판을 위함이라 하면, 이방에 있는 마음의 법과 동일한 기능을 한다고 한다면, 율법의 유익이 없지 않습니까?"
바울은 두 가지 논거로 이 질문에 답변합니다. 첫째로는 하나님의 존재를 말씀을 통해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둘째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씀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롬3:2-4, 새번역]
2 모든 면에서 많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것입니다.
3 그런데 그들 가운데서 얼마가 신실하지 못했다고 해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납니까? 그들이 신실하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없어지겠습니까?
4 그럴 수 없습니다.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이지만, 하나님은 참되십니다. 성경에 기록한 바 "주님께서는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인정을 받으시고 재판을 받으실 때에 주님께서 이기시려는 것입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이제 논의는 확장됩니다. 바울은 우리를 거대한 재판장으로 초대합니다. 원고석에 사탄(정확하게는 가상의 반론자), 피고석에 하나님, 변론석에 바울이 있습니다.
사탄이 질문합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의로움을 드러내시기 위해 우리 인간의 거짓을 폭로하신다면, 그렇다면 인간은 무죄가 아닙니까? 오히려 인간이 더욱더 죄를 범해서 당신의 의로움이 드러난다면 더 좋은 일 아닙니까? 의로움을 위해 죄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불의하신 것 아닙니까?(5절-8절)"
바울은 사탄의 공격을 3개의 논지로 반박합니다.
[롬3:10-12, 새번역]
10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11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12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롬3:20, 새번역]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인식할 뿐입니다.
[롬3:22-25, 새번역]
22 그런데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오는 것인데,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칩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못 미치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24 그러나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는 구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는 선고를 받습니다.
25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속죄제물로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피를 믿을 때에 유효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이제까지 지은 죄를 너그럽게 보아주심으로써 자기의 의를 나타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최후의 변론을 합니다.
[롬3:27-31, 새번역]
27 그렇다면 사람이 자랑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무슨 법으로 의롭게 됩니까? 행위의 법으로 됩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법으로 됩니다.
28 사람이 율법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29 하나님은 유대 사람만의 하나님이십니까? 이방 사람의 하나님도 되시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방 사람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30 참으로 하나님은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은 사람도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시고,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도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하십니다.
31 그러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율법을 폐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저는 사탄과의 씨름을 매일 경험합니다. 제가 분명 잘못했음에도,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피해를 받은 상대의 탓, 불운의 탓, 구조의 탓을 하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더 말씀을 붙잡아야 함을 깊이 깨닫습니다. 계속해서 내가 죄악의 판단 기준이 되려고 하기에,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기준을 배우고 그 기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말씀 앞에 끊임없이 나아가야 됨을 고백합니다.
주어진 오늘 하루도 내가 판단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판단의 기준임을 고백하고 드러내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가 삶에서 드러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