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바울을 향한 유대인의 질문은 계속됩니다.
"하나님이 의롭고,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라면, 그리고 율법이 의로움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심판을 위한 것이라면, 도대체 우리 조상은 어떻게 구원을(의롭다 여김을) 받았다는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해,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의 예시를 들어 답합니다.
[롬4:3-5, 새번역]
3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다" 하였습니다.
4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품삯을 은혜로 주는 것으로 치지 않고 당연한 보수로 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5 그러나 경건하지 못한 사람을 의롭다고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은, 비록 아무 공로가 없어도, 그의 믿음이 의롭다고 인정을 받습니다.
바울은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고 말입니다.
그럼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보셨던 아브라함의 믿음, 그 믿음도 결국 율법의 행위(대표적으로 할례)로 나타난 것이 아닙니까?
[롬4:11, 새번역] 아브라함이 할례라는 표를 받았는데, 그것은 그가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얻은 믿음의 의를 확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할례를 받지 않고도 믿는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으니, 이것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도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롬4:13-14, 새번역]
13 아브라함이나 그 자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곧 그들이 세상을 물려받을 상속자가 되리라는 것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14 율법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약속은 헛된 것이 됩니다.
아닙니다! 할례로 대표되는 율법은 이미 얻은 믿음의 의를 '확증'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아주 멋진 주장을 펼칩니다. 작디작은 한 민족에 갇혀 있던 믿음을 온 세계적이고도 우주적인 믿음으로 확장시켜 나갑니다.
[롬4:16, 새번역] 이런 까닭에, 이 약속은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약속을 은혜로 주셔서 이것을 그의 모든 후손에게도, 곧 율법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도 보장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의 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혈육의 조상이 된 것뿐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롬4:20-22, 새번역]
20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믿음이 굳세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1 그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약속하신 바를 능히 이루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겨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에게 강한 의문이 듭니다.
바울이 극찬한 아브라함의 믿음, 창세기에 나타난 그 믿음은 우리가 직접 보기에 그렇게까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는 약속의 땅에 있었음에도 기근의 상황이 닥치자 애굽까지 이동했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 때 자손을 주시기로 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그는 속으로 웃었습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바울이 말하는 믿음이 지적인 동의나 자기 확신과는 다른 종류임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은 성령이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자라나는 신뢰였습니다. 비록 그는 당면한 현실에 휩쓸려 인간적으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으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분을 끝까지 신뢰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기까지 자라났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는 흔들렸으나, 하나님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은 모습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바울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지금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말입니다.
[롬4:23-25, 새번역]
23 "그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다" 하는 말은, 아브라함만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 아니라,
24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여겨 주실 우리, 곧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까지도 위한 것입니다.
25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과 동일한 믿음을 받았습니다. 비록 아직까지는 다 자라지 않아 이리저리 흔들리는 지금 일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구원에 이르는 은혜의 확신으로 우리의 믿음이 자라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주신 자라나는 믿음을 붙들고, 오늘 하루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