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전직인 구원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로마서

by 한신자

9장에서 우리는 '왜 지금 이스라엘은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가?'에 대한 대답의 토대를 다졌습니다. 9장에서 바울이 도출한 근본적인 대전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구원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는 마치 하나님적인 눈높이로 나를 바라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한계 속에 있고, 믿지 않는 자들과 막 믿은 초신자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로마서 10장에서 바울은 이런 우리의 연약함을 위해, 하나님의 눈높이가 아닌 사람의 눈높이로 구원의 과정을 풀어냅니다.


[롬10:8-10, 새번역]
8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당신이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0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대해 우리는 관여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에 따라 살아나가기 시작할 때, 우리는 이미 주어진 하나님 나라로의 초대에 응답하게 되는 것입니다.


몇 세기 전, 9장과 10장의 관점에서 오는 차이가 재미있는 논쟁을 촉발했습니다.

구원의 방편은 하나님께서 완성하셨다. 그러나 개인의 구원은 자유의지적인 응답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응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태초에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예정하신 구원의 완성을 지금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칼뱅 측 주장과 '맞다. 개인이 자유의지적으로 구원에 응답해야 비로소 구원이 완성된다. 따라서 개인의 구원은 취소될 수도 있다.'는 웨슬리 측 주장이 부딪칩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요지는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구분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 하에 선포된 복음을 믿음으로 응답하여 이를 통해 다시 세상에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롬10:13-15, 새번역]
13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보내심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기록한 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간적인 눈높이로 설명된 구원으로 앞서 제기된 물음, '왜 지금 이스라엘은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가?'에 대해 답변합니다.


[롬10:16-18, 새번역]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는 "주님, 우리가 전하는 소식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하였습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생기고, 들음은 그리스도를 전하는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18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그들은 들은 일이 없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에 "그들의 목소리가 온 땅에 퍼지고, 그들의 말이 땅 끝까지 퍼졌다"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복음을 들었습니다. 모세로부터, 이사야로부터, 그들의 조상과 선지자들로부터 그들은 이미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율법의 의로움을 극단적으로 추구한 나머지, 믿음의 의로움을 보아도 믿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은혜에 믿음으로 반응해야 함을 도전받습니다. 그렇게 도전받아, 복음을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이 없는 영역에 복음을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왜 유대인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진 것처럼 보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