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버리셨나?

로마서

by 한신자

로마서 9장에서 제기된 의문, '왜 지금 이스라엘은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가?'를 바울은 9, 10, 11장이라는 장장 3장에 걸쳐 답변합니다.

9장에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성취하시고, 선택하셔서 이루신다'라고 이야기했으며 10장에서는 '인간적으로 바라보는 하나님의 선택은 복음을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이 믿음을 삶으로 고백해 구원에 이른다. 결코 율법을 지키는 것, 인간의 행동 자체가 구원을 이루지 않는다'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11장은 9장의 대전제와 10장의 소전제로 답변에 대한 결론을 도출하는 장이라 이해하면 쉽습니다.


[롬11:1-4, 새번역]
1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은 아닙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사람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이 엘리야를 두고 하신 말씀을 알지 못합니까? 그가 이스라엘을 고발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하였습니다.
3 "주님, 그들은 주님의 예언자들을 죽이고, 주님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습니다. 남은 것은 나 혼자밖에 없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 찾고 있습니다."
4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내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 명을 내 앞에 남겨 두었다"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사야서의 예를 들면서, 당시에 바알에 굴복하지 않은 칠천 명처럼 이 시대에도 이스라엘 모두가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보이나, 은혜의 믿음으로 구원받은 이스라엘이 분명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하는 눈, 듣지 못하는 귀로 인해 마음이 완고해졌습니다.

하나님이 대다수의 이스라엘을 이렇게 하신 이유는 이방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더 나아가 이런 이방인들에게 자극을 받아 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롬11:11-12, 새번역]
11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걸려 넘어져서 완전히 쓰러져 망하게끔 되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의 허물 때문에 구원이 이방 사람에게 이르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질투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이스라엘의 허물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고, 이스라엘의 실패가 이방 사람의 부요함이 되었다면, 이스라엘 전체가 바로 설 때에는, 그 복이 얼마나 더 엄청나겠습니까?


이런 바울의 말에 지금의 이스라엘과 비교하여 우쭐될 이방인들을 예상하고서, 그는 타깃을 바꿔 이방인들에게 겸손을 요청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접붙혀진 존재이기에, 하나님께로 이어진 구약의 뿌리는 여전히 건실하다고 바울은 엄하게 경고합니다.


[롬 11:17-18, 새번역]
17 그런데 참올리브 나무 가지들 가운데서 얼마를 잘라 내시고서, 그 자리에다 돌올리브 나무인 그대를 접붙여 주셨기 때문에, 그대가 참올리브 나무의 뿌리에서 올라오는 양분을 함께 받게 된 것이면,
18 그대는 본래의 가지들을 향하여 우쭐대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그대가 우쭐댈지라도, 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어서 그는 이방인과 믿지 않은 이스라엘의 순환관계를 이야기하며, 하나님의 가늠할 수 없는 위대한 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찬양합니다.


[롬11:29-33, 새번역]
29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마운 선물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습니다.
30 전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의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31 이와 같이, 지금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러분이 받은 그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마침내는 자비하심을 입게 될 것입니다.
32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않는 상태에 가두신 것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33 하나님의 부유하심은 어찌 그리 크십니까?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어찌 그리 깊고 깊으십니까?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판단을 헤아려 알 수 있으며, 그 어느 누가 하나님의 길을 더듬어 찾아낼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의 답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아직까지 율법의 의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은 당장에 구원받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 당신의 의로움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불의가 드러나 당신 앞에서 끊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고, 하나님의 선택은 영원에 이릅니다.
그래서 율법의 의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안에서 복음의 믿음으로 의에 이르고, 고백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 이방인 할 것 없이 합력하여 선을 보이는 모습, 접붙임 받아 겸손함으로 사랑을 드러내는 모습을 통해 최종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믿음을 회복하여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 모두가 모여 하나님의 크고도 놀라우신 지혜를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강하게 신뢰합니다.


이런 바울의 답변이 제게 주는 도전은 이것입니다. '지금 당장의 상대방 모습에 분노하거나 우쭐하지 말고, 저 사람과 함께 찬양할 그날을 소망하며 인내하고 사랑하라. 원수가 아닌 친구가 되어라.'

그러나 참 어렵습니다. 오늘 아침만 해도 같은 질문을 같은 사람에게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울컥해는 제 모습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어... 저 사람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그날을 소망하라고요? 어... 좀 낙심이 되는 도전인데요?'

그럼에도 어쩌겠습니까.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 함께하자고 하시는 길인데요.


말씀을 통해 주신 도전을 붙들고 오늘도 구원받은 자답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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