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영혼을 보는 은사가 있는 학원 선생님 밑에서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신앙과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사셨던 그분은, 지인의 전도로 교회에 발을 딛자마자 영안이 열리는 경험을 하셨다고 합니다. 한동안 그 은사가 부러워 영안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여하튼, 그 선생님 덕에 여러 신비한 영역을 알아가던 중에, 한날은 선생님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와, 어제 뜨겁게 예배드렸는갑네, 아직까지 성령의 불이 니 머리 위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거 보니"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영안이니 뭐니 다 거짓말이었구나' 싶었습니다. 그 전날 주일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떤 특별한 울림이나 감동 없이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심드렁하게 반응했습니다.
"엥? 다를 게 없었던 예배인데요?"
"아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어제 네 예배를 흡족하게 받으셨을 거다."
"뭐 말씀 기억나는 것도 없고 그런데요? 아, 아침부터 찬양팀 연습한다고 피곤해서 잠깐 졸기까지 했을 걸요."
제 반응에 선생님은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하셨습니다.
"니 생각과 감정이 예배에 뭐 그리 중요하겠노. 중요한 건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것이지. 네 피곤한 상황 가운데서 드려졌던 최선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신 게 아닐까 싶은데?"
바울은 16장을 끝으로 로마서를 마무리하며 여러 사람에게 인사를 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로마의 공동체에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바울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는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바울이 고린도에서 만났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발견한 순간, 전도여행 속에서 바울이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당시에 로마로 이동해 있었구나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롬16:3, 새번역]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여 주십시오.
바울은 문안인사와 함께 마지막 당부의 말을 전합니다. 우리에게는 Romans 16:19 says라는 찬양으로 너무도 친숙한 말씀입니다.
[롬16:17-20, 새번역]
17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이 배운 교훈을 거슬러서, 분열을 일으키며, 올무를 놓는 사람들을 경계하고, 멀리하십시오.
18 이런 사람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네 배를 섬기는 것이며, 그럴 듯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속이는 것입니다.
19 여러분의 순종은 모든 사람에게 소문이 났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일로 기뻐합니다. 나는 여러분이 선한 일에는 슬기롭고, 악한 일에는 순진하기를 바랍니다.
20 평화의 하나님께서 곧 사탄을 쳐부수셔서 여러분의 발 밑에 짓밟히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
바울이 염려했던 것은 로마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다가올 사탄의 속임이었습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하나님을 파는 자들, 아첨과 속이는 말로 공동체의 분열을 꾀하여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자들 때문에 공동체가 어려움에 처할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인사말에 이들을 경계하라는 당부를 남깁니다.
이 당부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자신의 이득을 취하는 자들을 우리는 지혜롭게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이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저는 바울의 이 당부를 제 자신에게 적용하고자 합니다. 주일 공예배와 삶의 예배에 임하는 제 스스로의 태도를 점검하기 원합니다.
나는 과연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었나? 나의 감정과 지식을 위하는 예배를 드리지는 않았나? 내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전히 드리는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오늘 말씀 앞에서 저는 하나님만 바라보던 순전한 예배가 그리워집니다. 그 어떤 손익계산도 소용없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모든 존재를 내어드리는 예배. 자극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평화와 은혜가 강같이 흐르는 예배.
허락된 일생에서 드리는 예배가 나를 위한 예배가 아닌, 하나님만을 위한 예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들의 예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