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서
비평학이 태동하는 19세기, 다니엘서 5장에 등장한 벨사살 왕은 남아있는 기록이 없었기에 허구의 인물로 여겨졌습니다. 역사적으로 느부갓네살 왕의 다음 왕은 마르둑이었고,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로 기록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레반트 지역의 사료발굴이 진행됨에 따라 벨사살 왕은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의 아들로, 나보니두스를 대신하여 섭정(부왕)으로 바벨론을 다스린 정황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왕과 부왕 다음가는 셋째 통치자로 임명된 것입니다.
[단5:29, 새번역] 벨사살이 곧 명령을 내려서, 다니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그의 목에 금 목걸이를 걸어 주었으며, 그를 그 나라에서 셋째 가는 통치자로 삼았다.
그런데 나보니두스 아들이 벨사살이라면 걸리는 절이 있습니다. 바로 벨사살이 느부갓네살을 '아버지'라 칭한 부분입니다.
[단5:2, 새번역] 벨사살 왕은 술을 마시면서 명령을 내려서, 그의 아버지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 온 금그릇과 은그릇들을 가져 오게 하였다. 왕과 귀한 손님과 왕비들과 후궁들이 모두 그것으로 술을 마시게 할 참이었다.
앞서 보았다시피 벨사살의 아버지는 나보니두스이고, 나보니두스는 쿠데타로 집권하여 느부갓네살 왕과 혈연관계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조상적 개념을 포함하는) 아버지라는 호칭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또한 느부갓네살에서 이어지는 정통성 있는 왕권을 주장하기 위한 호칭이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됩니다.(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라 칭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느부갓네살 사후 다니엘을 비롯한 유대 민족이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고, 메데-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고레스)가 바벨론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으며, 그 와중에 벨사살 왕은 예루살렘의 성전 기물로 화려한 연회를 벌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손이 나와 바벨론 궁전 벽면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즐거워야 할 연회장은 근심과 불안의 장소가 되었고,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났던 다니엘이 그 중심에 서게 됩니다.
[단5:26-29, 새번역]
26 그 글자를 해석하면, 이러합니다.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임금님의 나라의 시대를 계산하셔서, 그것이 끝나게 하셨다는 것이고,
27 '데겔'은, 임금님이 저울에 달리셨는데, 무게가 부족함이 드러났다는 것이고,
28 '바르신'은 임금님의 왕국이 둘로 나뉘어서 메대와 페르시아 사람에게 넘어갔다는 뜻입니다."
29 벨사살이 곧 명령을 내려서, 다니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그의 목에 금 목걸이를 걸어 주었으며, 그를 그 나라에서 셋째 가는 통치자로 삼았다.
여기서 더욱더 아이러니한 일이 진행됩니다. 제국의 멸망과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한 다니엘이 비록 하루지만 왕 다음가는 권력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신실하신 하나님을 다시금 묵상하게 됩니다.
벽의 글자는 분명 벨사살 왕에 대한 심판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이 그것을 보는 순간, 그는 이사야와 예레미야의 예언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사13:17, 새번역] "내가 메대 사람들을 불러다가 바빌론을 공격하게 하겠다. 메대 군인들은 은 따위에는 관심도 없고, 금 같은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렘51:11, 새번역] 너희는 화살촉을 갈고, 방패를 잡아라. 주님께서 메대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바빌로니아를 멸하기로 뜻을 세우셨다. 이것은 주님께서 주님의 성전을 무너뜨린 자들에게 하시는 복수다.
'바벨론이 메데에 의해 무너지는 하나님의 말씀이 드디어 실현되는구나'라는 생각에 이어서, 다니엘은 민족이 회복되리라는 말씀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벨사살 왕이 주려는 권세를 헛된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단5:17, 새번역] 다니엘이 왕 앞에서 아뢰었다. "임금님이 주시겠다는 선물은 거두시고, 임금님이 내리실 상급은 다른 사람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그럴지라도 저는 이 글자를 읽고서, 그 뜻을 풀이하여 임금님께 알려 드리겠습니다.
바벨론 벽에 쓰인 글자를 본 다니엘처럼, 우리는 과거 정황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아직 역사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것은 당대 사료의 부족과 결핍 때문이지 말씀이 허구라서가 아닙니다.
과거의 말씀들을 신실하게 성취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오늘도 저와 여러분의 삶을 통해 말씀을 이루어가실 하나님과 동행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