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팀을 위한 예배의 기초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예배는 나의 가짜주권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에 나를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것은 예배가 됩니다. 우리의 말 하나, 걸음 하나가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높이는 것일 때, 올바른 예배를 드리고 있다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하나의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가 예배라면, 공예배는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까?
이 의문에 대한 간단한 답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스스로 올바른 예배를 드릴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공예배가 필요합니다.
구약의 율법 기능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율법의 모든 조항을 지키면 그 사람의 삶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이 어떤 성인보다도 높기 때문이며,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까지 감찰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율법 앞에 철저히 무너져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는 일상 속의 예배를 통해 스스로에게는 구원에 대한 일말의 희망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 지점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초대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이 초대가 바로 공예배입니다.
공예배는 함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구별하여, 스스로가 행하는 예배를 멈추고 비일상적인 쉼을 누립니다. 우리는 멈춤을 통해 내 안에 또다시 자라나는 가짜주권을 발견합니다. 예배 순서와 진행 속에서 피상적인 성경말씀이 아닌 선포된 말씀의 적확한 의미를 묵상하게 됩니다. 성도와 교제를 하며 내가 경험한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 아니라, 다양한 환경과 상황 속에서 살아계시며 무궁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16:17-18, 새번역]
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공예배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셨다는 점입니다. 초대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예배의 목적은 반석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은혜를 찬양하고, 부활 생명이 우리에게 허락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성령이 인도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데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이 하나님을 향한 올바른 예배가 될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구별된 시간, 구별된 예배인 공예배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