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참 교활하다. 흐르지 않았으면 할 땐 그렇게도 획 지나가더니, 획 지나갔으면 하니까 멈춰 선 듯하다. 가끔 눈 한번 깜빡이는 것만으로 죽기 직전의 순간에 이르렀으면 하는 소망을 품어 본다. 나이가 들어 의식은 온데간데없고, 그저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그 어떤 미련도 없어지는 때가 있다. 그 빈도는 잦아지고 있다.
사진관에 갔을 때 일이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 제출할 증명사진이 필요했다. 광화문 근처 이면도로에 있는 사진관을 찾았다. "감사하다"고, "고맙다"고, "이거면 됐다"고 사진사에게 연신 굽신거리며 인사하는 사람을 봤다. 그가 양손으로 받쳐 가슴 안쪽 깊숙이 품은 사진은 영정사진이었다. "사진에 담긴 아버지 얼굴이 너무나도 깨끗하다"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간접적으로 직접적인 감정과 맞닥뜨린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다.
죽음으로 떠올릴 수 있는 부정(不淨)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죽음 앞에서도 환희할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관에서 본 그 사람이 그랬고, 지금의 내가 그렇다. 주인 잃고 수일을 굶은 강아지 뱃속처럼 내 감정은 메말라가고 있다. 주인이 찾아오면 허겁지겁 밥을 먹어치우는 강아지처럼 내 감정도 다시 차오를 수 있을지 매 순간순간 의문이 든다. 그 의문이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영역을 넓힐수록 죽음은 긍정이 된다.
미련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매일매일이 사투다. '더 잘 써야지' '더 잘해드려야지' '부족한 것은 어디 없나' '모자라는 부분은 뭐였을까'. 열등감을 연료 삼아 살고 있지 않나 할 정도다. 그래서 지치고, 다시 미련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쳇바퀴 같은 삶을 두고 누군가는 그렇게 살지 말라고 응원해준다. 방향도 제시해준다. 본인의 경험까지 들려준다. 고맙다. 고마움으로 마음속부터 벅차오른다. 그리고 들리지 않는다.
시간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더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새벽 밤 내 방 안에서도 흐르고 있다. 더 빨리 흐르길 기도하며 잠을 청한다. 귀가 후에도 전등은 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