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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꿘녜 Jul 22. 2020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어느덧 3개월 만의 기록이다. <대기업 퇴사, 별거 던데요>를 마지막으로 퇴사 기록을 한 번도 남기지 못했다. 그동안 난 무얼 했을까. 백수 신분은 여전히 그대로다. 이 기록의 첫 번째 글에 썼듯이 아무 계획 없이 오랜 시간 쉬고 싶었기에 그 본분에 참 충실히도 임했다. 그렇게 쉰 지 6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렇게 쉬면서 나는 정말 무얼 했을까.


나의 쉼에도 목표는 있었다. 비워내고 또 비워내면서 나만의 색 찾기. 무색무취로 물들어있던 내 삶에 선명한 나만의 색 하나를 꼭 찾고 싶었다. 아무 계획 없이 퇴사를 하고 백수가 된 이유가 그러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에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여정을 한번 돌아볼 때가 됐다.



위 사진은 퇴사를 결심하기 전에 썼던 메모다. 팀장님께 퇴사를 말씀드리기 몇 주 전부터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을 오락가락하던 차에 인터넷을 뒤지다가 위의 3가지 질문을 만났다. 출처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별거 없어 보이는 저 질문들이 내게 큰 힘이 됐다.


최악의 상황이 생각보다 최악이 아님을, 손실을 복구하기 위해 밟을 수 있는 단계는 생각보다 다양함을, 생활의 안정을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실천해나가면 그 또한 어렵지 않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가장 큰 깨달음은 마지막에 적어놓은 글귀였다. '이곳에 있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 더 이상 회사도 나도 속일 수 없다는 생각.' 이 메모를 쓴 다음날, 나는 팀장님께 퇴사를 말씀드렸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내게 용기가 대단하다고 말해줬지만 나는 용기를 내느냐 못 내느냐의 문제보다 내가 나를 지탱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의 문제가 가장 컸다. 쉬는 거야 얼마든지 쉴 수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영영 찾지 못하면 어쩌지.' 대한 불안함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를 덮쳤다.


분명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테고 나름 꿈을 좇아 여기까지 온 거일 텐데. 7년의 회사 생활을 끝내고 돌아보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뭐였는지 몽땅 잃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쉰다고 과연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이렇게 쉬어도 되는 걸까. 비워내면 그래도 조금씩 무언갈 채워나갈 힘이 생긴다던데, 그런 순간이 정말 나에게도 올까. 쉬면서도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을 자주 어지럽혔더랬다.



그런데 그런 순간이 정말로 찾아왔다. 결코 드라마틱하지는 않았다. 서서히 그냥 '뭔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내 안에서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 물론 그게 취업은 아니었다. 그렇게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책상을 정리하는데 저 메모가 눈에 띄었다.



그림 그리고  쓰며 콘텐츠 에디터, 마케터로서의 방향 다잡기. , 나는 퇴사 전부터 이런 욕망을 갖고 있었구나. 역시 내가 걸어가고 싶은 방향은 틀림없이 이쪽이구나. 원래부터 품고 있었던 마음이면서 나는 대단한 사실이라도 알게  사람인 마냥 갑자기 들뜨기 시작했다. 어떻게 방향을 잡아나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미 예전부터 조금씩 방향을 그려나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명확한 목표는  하나였다. '나만의 컨텐츠를 만들어 보자.'


그토록 바라던 나만의 색깔. 나만의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풀어나가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인스타그램에 내 이야기를 담은 그림도 그렸다. 하고 싶은 일이 끝까지 생기지 않을까 봐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우스워질 정도로 몰두했다.



그 모습은 현재 진행형이다. 2월 초에 퇴사를 했고 4월 말부터는 쉼과 동시의 나만의 컨텐츠를 만들면서 살고 있으니, 퇴사 3개월 이후부터 무언가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다. 퇴사하니 어떻냐는 주변의 질문에 늘 태연하게 '너무 좋다'라고 답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없어진 나, 그리고 그걸 다시 찾지 못할까 봐 불안해하는 나, 그럼에도 일단은 쉼을 선택한 내가 공존하면서 마음이 늘 편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정말 쉬어보니 내게도 다시 열정이 생기는 순간이 찾아왔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지금은 꽤 만족하며 살고 있다.


이 글이 퇴사를 준비하거나 혹은 퇴사를 한 분들께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모두 저마다의 고충이 있을 테고 그 시간들을 극복하는 방법 또한 다양한 모습들일 테니.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물밀듯 밀려오는 불안의 파도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굳건하게 두 발로 지탱한 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잠시 쉬어도 되고 모든 걸 내려놓아도 되지만 자신만큼은 내려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믿어주는 '나'가 있다는 건 기나긴 불안을 견디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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