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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꿘녜 May 28. 2020

대기업 퇴사, 별거 던데요.


마지막으로 다닌 회사는 대기업이었다. 내 팔자에 대기업은 언감생심이라 생각했는데 어쩌다 보니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 만한 큰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더라. 모든 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운도 실력이라지만 나는 정말 운이 8할 이상은 차지했던 것 같다.


나는 지방대 광고홍보학과를 나왔다. 수능 성적은 낮았지만 그래도 흥미를 느꼈던 전공을 선택했으니 다니는 동안 그다지 기가 죽지는 않았다. 대학생활은 재밌었고 전공 공부도 제법 잘 맞았다. 그래서 줄곧 장학금도 타고 대외활동도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다. 돌이켜보면 가장 열심히, 재밌게 살아왔던 시절이다. 3학년 2학기, 광고홍보학을 전공한 누구나 그러하듯 여러 공모전에 도전했고 국내에서 꽤 유명한 홍보대행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우수상도 대상도 아닌 '장려상'이었지만 그 희미한 한 줄로 나는 취업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장려상을 받았다는 타이틀 하나로 해당 공모전을 주최한 회사의 문을 두드리다니. 그런데 그게 웬일인지 통했다. 그리고 면접 때 한 대리님이 던진 질문. "왜 우리가 면접자님을 뽑아야 하는지 어필해보시겠어요?"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저랑 같이 일하면 솔직히 진짜 즐거우실걸요." 아니,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말해놓고도 나는 머릿속으로 미쳤다, 망했다를 연발했지만 결과는 합격이었다.


비록 인턴이었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자신감만 넘치는 지원자를 뽑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회사가 모험을 하는 걸까 하는 의구심을 품으며 첫 출근을 했다. 팀은 온라인PR팀이었고 기업 SNS 채널 콘텐츠를 담당하는 일이 주를 이루었다. 일은 잘 맞았고 그렇게 6개월간 참 신나게 일했다. 오죽했으면 같은 팀 과장님이 나에게 '넌 회사를 너무 즐겁게 다니는 것 같다'며 톤을 조금만 낮추라는(?) 조언까지 해줄 정도였으니.


6개월 인턴 계약이 끝나고 정규 입사를 위한 면접 제안이 들어왔지만 토익 950점에 미국 대학을 나온 선배조차 계약직으로 채용되는 모습을 보고 미련 없이 회사를 나왔다. 외국계 클라이언트가 다수를 이루는 곳이었기에 나름 이해는 했지만 경력의 첫 시작을 계약직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7개월간 취준생으로 살았다. 공모전 수상 경력 하나로 잘나가는 홍보대행사에서 인턴까지 했는데 정규직 취업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당시 대부분의 취준생들은 대기업을 목표로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대기업은 나에겐 너무나  기업이었고 조금  필드에서 역량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좋게 말하면 겸손, 안좋게 말하면 자신감이 없었던  같다. 아무튼 7개월만에 다행히 취준을 마치고 당시 공공홍보 분야 1위의 홍보대행사에서 정규직을 안전하게 시작했다. 거기서 3년을 일했고 퇴사  1 뒤에 회사가 망했다. 다행히 나는 회사가 망하기 전에 '에디터' 직군의 다른 회사로  이직을 성공했었더랬다. . 어찌나 운이 좋았던지.


이직한 곳에서의 에디터 업무는 처음인데다 경력직 이직도 처음이었기에 긴장감이 어마어마했지만 회사 분위기와 팀 동료 간의 우애가 너무 좋았다. 여태 다닌 회사 중 가장 좋았던 곳으로 기억될 정도니까. 아무튼 그곳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나름의 인정도 받으며 회사 생활을 이어나가던 중 함께 일했던 대기업 클라이언트로부터 '면접 제안'이 덜컥 들어온 것이다. 취준생때와 마찬가지로 대기업은 내게 너무 큰 곳이라는 생각에 겁부터 났지만 큰 회사 면접은 어떤지 경험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도전했고 또 합격을 하게 된다. 이놈의 운빨.






하지만 내게 마지막 회사였던 그곳은 가장 힘들었던 회사로 기억한다. '대기업'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달콤함이 그리 오래가지 못했으니까. 외식 마케팅이라는 흥미로운 분야였지만 마케팅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고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니 2년 만에 팀이 세 번이나 바뀌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2년 3개월을 꾸역꾸역 버티다 결국 퇴사했다.


대기업에 도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제대로 된 어른들께 배워보고 치열하게 성장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경력직이지만 아직 배울 게 많았고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기에 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른을 만나지 못했기에 허탈함이 컸다.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네이버 뉴스만 보다 퇴근하는 어른과 책임을 미루고 남 탓하기 바쁜 어른, 본인이 원하는 대로 일을 가져오지 않으면 고함을 지르는 어른들 틈에서 나는 어떤 성장을 했을까. 물론 좋은 어른도 많았지만 그런 분들과 회사에서의 인연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내 동력이 거기까지밖에 안 된 거였겠지.


나를 조금 아는 사람들은 내가 정석 코스를 밟았다고 한다. 에이전시로 시작해 대기업까지 찍었으니.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었다. 나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지만 '대기업'이라는 달콤한 타이틀에 가려져 문드러져만 가는 내 경력과 행복, 일상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대기업 퇴사는 나에게 아주 큰 별일이었다. 진급을 앞둔 시점이었고 퇴사 후 계획이 없다는 것, 나를 찾기 위해 퇴사한다는 것 등이 그 이유를 뒷받침한다. 때문에 나는 '퇴사, 별거 아니야'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없다.


오랫동안 묵혀왔던 이야기를 꺼냈다. 구구절절 길었지만 평범한 대학생이 첫 취업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이후에 운이 좋아 대기업까지 경험해봤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물론 지금은 백수의 모양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아직 대기업을 꿈꾼다. 그걸 나쁘게 바라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타이틀보다 나 자신의 행복과 성장이 우선인 사람이었고 그곳은 그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했기에 나왔다. 조금 더 신중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다. 그래도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는 지금이 훨씬 낫다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덜 불안하다. 큰 별일이었던 대기업 퇴사 덕분에 나 자신을 조금씩 알게 됐고 이제 내 인생의 이정표를 제대로 맞추면 될 일이다. 다시 한번 나의 운을 믿고 뚜벅뚜벅 걸어 나가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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