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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꿘녜 May 28. 2020

그래서 퇴사하고 뭐하느냐고?


퇴사하고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요즘 뭐해?”


나는 요즘 아무것도 안 한다. 왜냐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어서 퇴사했기 때문이다. 꽤나 그럴싸해 보일 수 있겠지만 그냥 게으르게 놀고먹고 한다는 이야기다. 두 달쯤 된 것 같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가만히 있는다. 내가 먹고 싶은 게 뭔지 나에게 질문하고 그에 맞는 답을 준비한다. 그리고 또 가만히 있는다. 책도 본다. 그러다가 사색에 잠겨 이런저런 생각들을 한다. 가끔 나가서 산책도 한다. 좋아하는 자연을 가까이에 두고 천천히 본다. 오늘 바람이 참 좋네, 하면서.


부모님은 역시나 걱정하시기 시작했다. '취업 준비는 하고 있냐'하시면 대차게 '응'이라 대답한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나와 대화를 하는 이 시간들도 재취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퇴사 이후의 삶을 오롯이 기록하려면 퇴사 이전의 삶도 언젠가 끄집어내서 이야기해야 할 텐데 썩 유쾌하지는 않겠다 라고. 아직은, 아직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어쨌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내게 퇴사 이후의 삶에 대해 물어본다. 계획없는 퇴사가 신기하기 때문이겠지. 사실 나는 살면서 블로그도 처음 시작했고, 내가 사는 동네 후암동의 기록을 조금씩 써 내려가고 있으며 나만의 컨텐츠를 위한 그림을 꾸준히 그려나갈 계획도 갖고 있지만 이런 것들을 설명하기엔 아직 부족한 게 너무 많다. 때문에 오늘도 나는 그냥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요."라고 답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어서 퇴사를 했고 정말 한 달 넘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니 비로소 내가 좋아하는, 하고 싶은 것들의 색깔이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는 말은 덧붙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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