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직장동료한테 이런 질문을 받았었다. "퇴사한 다음날, 제일 먼저 뭐하고 싶어요?" 사실 별다른 계획 없이 내던진 사표였기 때문에 퇴사 다음날의 계획이 있을 리 만무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집 청소'가 간절히 하고 싶었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새집이었고 나름 깨끗하게 하고 살긴 했지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엔 '제대로 청소 한번 해야 하는데'하는 욕구가 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왜 그렇게도 청소가 하고 싶었을까?
가장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는 대기업이었고 나름 워라밸이 잘 지켜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매우 가까웠기 때문에 집에 도착하는 시간도 비교적 빨랐다. 때문에 청소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고 여가생활을 즐기기에도 충분한 조건의 삶이었다. 그런데도 항상 옷장에는 정돈되지 않은 옷들로 넘쳐났고 보이지 않는 공간에는 억지로 쑤셔 넣은 잡동사니들로 가득했다. 마치 내 인생 같았다. 겉으로 봤을 때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언제나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 꽁꽁 숨겨두고 모른척하기 바빴던 내 삶. 정신적 여유가 없었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일상의 파편들.
그래서 퇴사 다음 날, 청소를 시작했다. 옷장에 쑤셔 넣었던 옷들을 분류하고 손빨래를 하고. 부엌 찬장의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고. 목적을 상실해버린 책상에게도 제 몫을 찾아주고. 오랫동안 방치해두었던 구멍 난 스타킹들을 꺼내 하나하나 바느질을 하고. 불필요한 물건들은 분류해서 버리고.
아, 이것들이 뭐라고 내 마음이 이리도 평온해지는 걸까. 조각나 있던 일상의 파편들을 한데 모아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 일상성을 회복한다는 말이 이런 거였구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 제목 '별일 아닌 것들로 별일이 됐던 어느 밤'처럼 별일 아닌 청소를 통해 내 마음에는 그렇게 별일이 찾아온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게을렀기 때문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회사를 다니면서 오랫동안 지친 내 마음을, 어지럽혀진 내 일상을 외면한 채 게으르게 살아온 건 맞으니까. 그렇게 나는 퇴사를 하고서야 일상을 회복해나가기 시작했지만 지금 내가 누리는 이 무의미한 시간들이 분명 유의미한 언젠가의 시간으로 흐르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