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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꿘녜 Nov 04. 2020

나의 도망 회고록

내 첫 직장은 대행사였다. 아무리 대행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대행’이라는 단어의 뜻은 알 것이다. 남을 대신하여 행하는 일, 또는 사람. 그리고 그 일이 얼마나 고된 노동 인지도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무리  직장이 대행사였어도 분명 설렘이 있었다. 다양한 프로젝트를 동시다발적으로 경험해볼  있는 대행업의 장점이  성향과  맞았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기도 했었다. 그래서 힘든 순간이 많았어도  또한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라 생각하며 힘차게 회사생활을 이어 나가곤 했다. 실제로 일이 재미있기도 했고.



그런데 3년 차가 되었을 무렵, 조금씩 ‘이건 아니다’라는 신호가 머릿속에서 깜빡이기 시작했다. 가장 흔한 신호는 야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것. 새벽 3~4시를 넘기는 일이 잦았고 퀭한 눈으로 겨우 잡아 탄 택시에서는 “어유, 재밌게 놀다 가시나 봐요~”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나중엔 반박할 에너지도 없어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던 나. 다시 생각해도 참 측은하다.


두 번째로는 월급이 밀렸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 일이냐 하면, 일단 생활 자체가 안 된다. 당장의 월세와 카드값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특히 나처럼 돈을 얼마 모으지 못한 사회초년생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법인카드까지 막혀 사업 운영을 개인 신용카드로 쳐내기 시작한다. 물론 직급이 낮았던 내가 쓴 금액은 높지 않았지만 프로젝트 제반 비용이 내 카드에서 나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일은 이렇게 야근이 많고 월급이 밀리면서도 당장 도망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눈 앞에 지옥이 펼쳐져 있는 데도 지옥에 적응한 채 어영부영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 소름 돋는 사실을 야근하고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깨달았다. 너무 고단하고 졸렸던 어느 새벽 날,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서 출근하고 싶은데 몇 시간 자지도 못하고 씻고 다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죽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지금 교통사고가 나면 푹 잘 수 있지 않을까? 그럼 회사도 안 가고 좋을 텐데.’


아주 짧은 순간, 달콤한 상상을 했다는 생각과 동시에 육성으로 “미쳤다”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정신을 번쩍 차렸다. 내가 지금 우울증일 수 있겠구나. 나 지금 상태가 많이 안 좋구나. 처음 제대로 인지한 순간이었다.



정신을 차린 다음 날, 종이에 하나씩 써 봤다. 내가 이 회사에 있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과 아닌 점. 역시나 아닌 점이 빼곡하게 채워졌다. 무리한 야근으로 인해 허리가 나갔고 당시 만나던 사람에게 대차게 차이기도 했고 그렇다고 일에 대한 보상을 돈으로 기대할 수 있는 곳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도망쳤다. 적어도 월급이 밀리지 않는 곳으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그때의 도망은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 첫 회사에서 3년 이상을 버티지 못해 도망쳤지만 큰일이 일어나지 않았고 되려 삶이 더욱 나은 방향으로 흘러갔기에 도망의 순기능을 체득했기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하다’는 링컨의 명언을 완벽하게 이해했던 때도 그때다.


나의 온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어도 돌아오는 게 하나도 없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내 삶이 어느 것 하나 행복하지 않을 때.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조금씩 도망치는 삶을 살고 있다. 나에게 맞지 않는 게 무엇인지, 내가 견딜 수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면 그뿐이다. 미련은 접어둔 채 최대한 신중하게 도망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더 나은 삶을 빨리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불행을 피하고 싶다면 도망쳐야 한다. 최대한 빠르게, 멀리,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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