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을 관찰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특히 좋아하는 사람의 취향일수록 더욱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되는데 내게는 TV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와 유튜브 ‘브이로그’가 좋은 매개체였다. 평소 가치관이나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 유명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그의 사소한 취향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볼 수 있다는 건 팬으로서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설령 어느 정도의 연출이 가미된 모습이라 해도 말이다.
특히 브이로그는 날 것의 이미지가 더욱 강해 자주 챙겨보게 된다. 좋아하는 누군가가 챙겨 먹는 음식, 운동, 음악적 취향까지 모두 접할 수 있는 브이로그를 보고 있노라면, 휴지가 물을 쫙 빨아들이듯 빠른 속도로 그들의 취향에 함께 흡수되는 기분이 든다. 어릴 적 코미디언을 꿈꿨기 때문일까. TV 속 연예인들의 말투나 행동을 따라 하는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어 마음에 드는 브이로그를 보고 나면 무엇이든 꼭 하나 이상은 따라 해 보는 요상한(?) 취미가 생겼다.
혼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장 흔하게 따라 해 볼 수 있는 건 단연 요리다. 1인 가구가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한계에 부딪힐 때쯤 마주하는 그들의 요리 취향은 나의 요리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좋은 선생님이라 늘 잊지 않고 챙겨 보는 편이다. 그렇게 따라 해 보다가 여러 방식으로 응용해 나만의 레시피로 굳어진 요리들도 꽤 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자주 듣던 플레이리스트는 왠지 지겹고 알고리즘으로 추천해주는 음악은 식상하다 느껴질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듣는지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마음에 드는 노래를 찾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친구들과 리스트를 공유하는 것도 좋지만 매번 묻고 다닐 수는 없으니 내게는 이 방법이 제일 유용했다. 실패 확률이 가장 낮기도 했고.
취향에 대한 명확한 가치관이 생기기 전에는 다른 사람의 취향을 모방하는 것은 진정한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했다. 아무리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지만, 취향에 있어서 만큼은 스스로 개척하고 찾아야만 진정한 것이라는 이상한 편견이 있었던 거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취향의 대부분은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 않을까?
내 경우만 봐도 나는 20대 초반에 만났던 애인이 추천해준 Marcus Miller의 음악을 아직도 듣는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은 누군가와 함께 갔던 바에서 우연히 들었던 로라 페르골리치(LP)의 Lost on You는 여전히 손꼽히는 내 인생 곡이다. 아무리 노래가 좋아도 들을 때마다 연관된 사람이 떠오르지 않냐는 질문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의 유효기간은 짧아도 취향의 온도는 꽤 오래가더라고. 사람은 떠나도 취향은 남는다는 말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견고한 취향이라는 건 역시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맺어지는 결실 아닐까. 희미한 H심 연필로 긴가민가 하면서 짧은 선 스케치를 그리고 있을 때, 누군가 굵직한 B심 연필로 길쭉한 선을 선명하게 그려주고, 거기에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색을 입히고 또 다른 누군가 다가와 각양각색의 색을 더하면서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의 반복.
내가 살아가는 방식 또한 주변인의 취향에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하면 내 삶도 흥미롭게 느껴진다. 타인의 취향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일과 맞닿아 있다는 것. 그래서 오늘도 끊임없이 누군가의 삶을 관찰하고 모방하며 살아간다. 나와 ‘우리’의 다채로운 취향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