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에서 첫 질문으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예슬님의 경험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해 보세요.” 자기소개도 아니고 대뜸 경험을 이야기해보라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래전에 써 둔 일기가 떠올랐다.
“나는 공부를 못했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못 갈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아 부랴부랴 과외 비슷한 학원을 다니며 긴급 처방을 했고, 고3 때는 희망 대학은커녕 성적에 맞춰 겨우 대학에 진학했다. 쉽게 말하면 중하위권 정도였다고 나 할까. 꼴찌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한다고 볼 수도 없는 그런 애매한 위치.
엄마는 늦게라도 내 뒷머리가 트일 수 있다며 오래도록 낙관했지만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부머리가 이렇게 없는데도 내가 나중에 교수가 될 수도 있다나 뭐라나. 어디서 듣고 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재밌다.
그래도 이쯤 되면 어떤 반전의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지만 역시 그렇지도 않다. 그나마 초등학교 때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선생님의 “예슬이는 창의력이 뛰어납니다.”라는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5년째 쭉 이쪽 일을 해오고 있다는 게 그나마 희망적인 이야기라 할 수 있으려나.
뛰어나게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유일하게 재밌어하고 꾸준히 해 온 일이라 나 스스로에게 칭찬의 글을 남기고 싶었다. 공부를 못 했던 이유는 다른 것에 호기심이 많았다. 다행히 지금은 호기심의 상대를 찾은 것 같다.”
면접관은 브레인스토밍 차원으로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을 수 있지만 나는 그때의 일기를 떠올리며 꽤 짜임새 있는 답변을 했다. 보편적으로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학업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지만 나는 나만의 무기가 뭔지 아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걸 지금까지 꾸준히 해 오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힘주어 표현했다.
나의 지난 과거는 지독하게 평범한 무채색으로 가득한 줄 알았는데 실은 그런 무채색들이 겹겹이 쌓이고 쌓여 ‘무색무취로도 잘 살고 있는 나’를 만들어 낸 게 아닌가 싶다. 여전히 뚜렷한 나만의 색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다만 어떤 색이든 무채색을 섞으면 명도가 진하게 표현되는 것처럼 일에서든, 사람에게서든 오래도록 진하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