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갈걍 Jun 17. 2020

책을 안 읽어도 책방은 좋아

부산, 책방 녹색광선.


서점이라는 말보다 책방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서점이라고 하면 책을 판매하는 모습이 떠오르고, 책방이라고 하면 그저 책이 쌓여 있는 공간의 분위기 같은 것이 조금 더 느껴지는 탓이다. 사실 서점이나 책방이나 그게 그 말인데도 이런 차이가 느껴지는 건 돈으로 거래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에겐 더 소중한 까닭이겠지. 그러나 세상에 물건을 팔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책방은 없다. 그런 점에서 결국 책방은 책과 방으로만 존재하지 못하고 반드시 점(店)의 속성을 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서점이든 책방이든 그 공간을 떠올릴 때 내 머릿속 그곳에 사람이 많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책은 읽히기 위해 세상에 나온 물건이고, 무언가를 읽는 행위는 고요함과 매개되기 때문인지, 늘 내 머릿속 서점엔 한두사람이 서서 가만히 책을 펼쳐 보고 있거나 아무도 없는 먼지쌓인 책들 사이에 책방 주인만 우두커니 낡은 모습으로 앉아 있곤 하였다. 이유라곤 어렵게 찾을 것도 없이 간단했다. 나에게 책이라는 물건이 더는 팔리지 않는, 어떤 쇠락해가는 문명과 동일시 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현실과는 썩 다른 이야기였다. 세상에 잘 팔리는 책이 부지기수요 드넓고 세련된 책방이 얼마나 많은데. 내 머릿속 서점만은 꼭 그렇게 현실의 변화를 거부한 채 오래된 모습만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영화 수업에서 한 번 영화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다. 영화를 상영하는 곳이라는 객관적인 장소가 아니라 각자의 추억 속에 있는 주관적인 공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같은 맥락에서 서점에 대해 생각해보면 내 머릿속 서점은 저 멀리 문학 책장을 미뤄 놓고 문제집을 잔뜩 깔아놓은, 빛이 바랜 간판을 달아놓고 망해가던 동네 서점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내가 떠올리는 서점에는 퀴퀴한 먼지 냄새와 기울어진 나무 서랍, 지루하게 드나드는 햇살이 가득했고 그런 것들이 책방에는 어울리는 법이라고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곤 하였다.


그런 내 관념이 조금 바뀐 것은 다시 책을 사기 시작하면서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선뜻 구입하던 책을 대학에 와서는 잘 구입하지 않았다. 먹고 사는 데에 비용을 쓰기 바빠서, 나는 책을 아예 안 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책을 딱히 사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은근슬쩍 책방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을 넘어서서 점(店)보다 방(房)이 더 중요해진 그 공간에는 내가 한때 사랑했던 서점의 이미지가 머물러 있었다. 그곳들은 한결같이 작았고 세상으로부터 독립적이었다.


그래서 독립서점이라는 말을 붙였나보다 생각했다. 내가 가본 책방들은 물건을 판매하기 위한 곳보다는 공간을 유지하고 가꾸는 것이 더 중요한 목적이 되는 곳으로 보였다. 자본이 존재를 나타내고 지탱하는 세상에서 소심하게 자본 대신 취향을 내세우는 곳들. 문득, 소심한 책방은 그래서 소심했구나, 새삼 책방의 이름을 잘 지었구나 생각했다. 나는 독립출판물을 굉장히 사랑하는 게 아닌데도 작은 서점들을 채우는 취향들이 좋아서 독립서점이 유행하는 것이 좋았다. 점점 늘어나는 작은 공간들이 자본과 상관이 없는 꿈을 꾸어도 괜찮다고 격려해주는 것 같았다.


여전히 내 머릿속 책방엔 텁텁한 종이 질감, 조용한 책장, 그리고 어딘가 무광이 어울리는 냄새들. 그래도 더 이상 그것들은 쇠락해가고 있지는 않다. 작은 서점들은 망해가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조용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반짝일 것이다. 더는 쓸쓸하지 않을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