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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걍 Jun 17. 2020

발목이 예쁘다는 말

제주, 공천포.


평소에는 자주 볼 일이 없는 신체 부위가 좋습니다. 가령 발목이 예쁘네, 그런 거요. 그런 칭찬은 그냥 예쁘다는 말보다 훨씬 섹시하게 느껴집니다. 직접 들으면야 당황스럽긴 하겠지만요. 어느 일기엔가는 나도 있는 줄 몰랐던 점의 발견을 적고 이 점마저 알아봐 줄 사람이라면 사랑에 빠지겠다고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니까 그런 사소한 부위들을 바라봐주는 건 결국 사랑인 거지요. 복사뼈가 얄쌍하다던가, 손가락 마디가 오목하다던가, 뒷목이 가느다랗고, 무릎이 발그스름하고, 그런 일상에서는 전혀 쓰이는 적 없을 것 같은 문장들을 마주했을 때의 놀라움이 기분 좋습니다. 그냥, 정말 놀라워지거든요.


한 명의 사람은 한 명의 우주라고 했습니다. 그만큼이나 사람들은 모두 다양하고, 평생 동안 한 사람만을 살펴도 모두를 헤아릴 수는 없겠지요. 그러니까 아무리 누군가를 오래 만나도 어느 순간 발견할 거리가 남아있곤 합니다. 팔꿈치에 점이 있다든지, 발등의 흉터라든지, 등에 남은 몽고반점이라든지, 저는 그런 게 놀랍습니다. 그런 아주 사소한 발견은 결국 거리감과 상관 있는 것이라서요. 새로운 발견을 하는 건, 그 사람과 더욱 가까워지는 일이라서요.


가깝다고 여긴 사람과 더욱 가까워지는 경험은 값진 일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우주가 존재한다면 아무리 가까워져도 결국 그 두 개의 다른 존재는 평생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결국 우리는 그렇게 만나지 못할 사람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득한 여백의 공간을 채울 수 있는 문장들을 발견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혼자만의 독단이고, 오해에 지나지 않더라도요. 비어 있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니까 전부 틀린 문장으로 이루어진 사이가 되더라도 누군가와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말해봅니다. 발목이 가느다란 사람은 바람 같은 사람일 것 같습니다. 낭창거리며 여기저기로 훌쩍훌쩍 떠날 것 같습니다. 그 발목을 잡고 한 철 낮잠에 들고 싶습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그 사람이 없더라도 손에 쥐었던 서늘한 뼈의 감촉이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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