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갈걍 Aug 04. 2020

그 사람을 놓았으면 해

동생 A에게


 A에게...




 안녕, A야.


 꽤 예전부터 이곳에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그 첫 대상이 너라는 건 그다지 놀랍지 않네. 요새는 네 생각이 자주 났거든. 그래서 너와 긴 통화를 마치고 오는 길이야. 이상하게 처음엔 조금 멋쩍더니, 몇 마디 하니까 입이 풀려 실컷 떠들게 되더라.


 그런데 웃긴 건 뭔 줄 아니. 오늘 너를 붙잡고 1시간 52분 25초를 떠들어댔는데도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못 했다는 거야. 음. 정정할게. 못 한 게 아니라 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런 것들.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거나, 그러니까 언제나 너를 우선시하라거나, 네가 이기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거나, 때로는 우리가 나쁜 마음을 가졌다면 좋았겠다는 그런 말들…….


 그런 말들을 옮겨 이 편지에 적어. 그거 아니? 난 은근 오지랖이 있어. 나도 모르는 새에 나를 많이 알아가 버린 너이기에 어쩌면 이 사실도 알고 있을지 모르지. 오지랖으로, A야, 나는 네가 걱정돼. 내가 뭐라고 너를 걱정하나 싶다가도 그러더라. 왜냐하면 네가 착해서. 네가 테두리 안의 사람을 쉽게 밀어내지 못함을 보고 들었어서. 내가 너를 조금밖에 모르고 또 조금은 알아버린 탓에 너를 걱정해.


 나는 누군가가 착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착하다는 말이 왜곡된 세상이 슬프고, 착함이 가장 최하위의 미덕이 되어버린 듯한 사회가 슬프다. 그럼에도 선하고 훌륭한 내 동생. 세상의 선함을 믿고자 하는 너의 품성이 너의 강함인 걸 알아. 착하다고 해서 어찌 세상을 모르겠어. 이 세상 속에서도 네가 선한 사람으로 남은 것은 네가 애쓰며 살았기 때문이겠지.


 자주 열심인 네가 대단했어. 열심히라는 말은 더울 열 자에 마음 심 자를 쓴댄다. 그러니까 너는 마음이 뜨거워 본 적이 있는 사람이고, 온 힘을 다해 마음을 쏟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지. 그 점이 항상 멋있는 나의 동생. 그러나 마음이라는 것은 용기를 바꿔 담을 수가 없어서, 이미 쏟아버린 마음을 바꿔 담을 수도 어디에 버릴 수도 없어서 난감해지는 상황이 오곤 하잖아.


 그렇게 이미 흘러간 마음이 나를 붙잡으면 처음에는 기껍게 붙잡히겠지. 무언가가 바뀌어감을 느껴도 감내하며 머무르겠지. 어쩌면 책임감을 느낄지도 몰라. 누가 강요한 게 아닌 마음이잖아. 그러니까 사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을 수 있지. 여전히 잡은 손은 따뜻하고, 같이 하는 식사는 맛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마음을 그대로 두고 있을지도 몰라. 마음을 버리고 싶단 생각도 너는 하지 않을 수 있지.


 하지만 항상 기억하렴. 그 어떤 순간에도 너는 너 자신을 가장 우선시해야 한단다. 세상도, 사람도, 전부 네가 단단히 존재해야 의미 있는 것들이란다.


 내가 네 사진을 따라 그리며 옆에 그렸던 해바라기를 기억하니. 그 밑에 너는 해바라기라고 작게 적었었잖아. 내가 보는 너에게는 그런 해사한 기운이 있었어. 너는 네 곁의 사람이 아무리 무거운 날에도 조금은 가볍게 걸음을 옮길 수 있게 해 주었거든. 그리고 나는 네가 언제나 그 기운을 간직하길 바라고 있어. 함께 있을 때 같이 무거워질 거라면, 차라리 조금 멀어지길 바라.


 생각해보렴. 그와 지나치게 가까이 있지는 않은지. 너무 가까우면 보지 못하는 것들이 생기고, 그러면 거리를 두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단다.


 물론 나는 타인이기에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거지. 네가 가진 복잡하고 깊은 불안을 헤아리지 못하는 내가 이런 말들을 해서 미안해. 너를 위한다는 건 변명이고, 이 모든 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인 걸 알아. 나는 내가 네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거든. 그러니까 어떻게든 떠들어 보는 거야. 머리가 복잡해지면 한 번쯤, 네 안위를 더 우선시하길 바라는 사람도 있음을 떠올려 주길.


 미안한 마음에 귀여운 이야기를 덧붙여볼까. 있잖아, 야생의 햄스터는 하루에 수십 km씩 움직인대. 햄스터는 영역 동물이라 3km에서 5km의 영역을 가진다는 거야. 자기 몸집의 몇만 배를 자기 영역으로 삼는다는 진짜 대단하지 않니? 나는 삶이 힘들 때 용감한 햄스터를 떠올리면 기분이 좀 나아지더라.


 근데 너, 햄스터랑 좀 닮았어. 누군가 돌보는 햄스터를 바라보고 있으면 자그마한 생명이 저렇게까지 싶을 정도로 열심히 움직인다는 것에 감명받을 때가 있거든. 너도 그렇잖아. 앞서 말했듯 열심이고, 작고 귀엽지. (적어도 내 눈엔 그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은 막막한 탐험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햄스터보다 용감하지 못한 걸지도…ㅋㅋㅋ


 내가 탐험에 대해 알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딱 하나야. 탐험에 가장 중요한 건 짐을 줄이는 거라는 것. 너나 나나, 우리는 참 많은 걸 이고 가려 아등바등하잖아. 그러니 덜어내야 할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과 쳐내기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결단력이 우리에게 깃들길 기도해. 내 몫이 아닌 일에서는 과감히 도망쳐, 차라리 나빠질 수 있는 우리이기를.


 얘기가 길어졌다. 나는 언제나 내 얘기를 길게 풀어놓곤 하잖아. 본론만 깔끔하게 말하는 두괄식 화법 같은 거, 나는 정말 못하겠더라. 그래서 가벼운 화젯거리도 발단부터 결말까지 시시콜콜 말해야만 하는 나를 피곤해하는 사람들도 더러 만났지만, 너처럼 언제나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더욱 많이 만났으니 나는 복이 많은 편임에 감사해. 고마워 A야.


 긴 장맛비가 그쳤다. 하늘이 개이면 구름이 선명한 날 만나자.




2020년 8월 3일

너의 언니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