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움을 담아, D에게
D야 안녕! 잘 지내니? 세상에, 첫 안부 인사를 적으며 진심으로 소식이 궁금해진 건 오랜만이야. 연락이 끊긴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거든. 너를 친구라 칭하면서도 네가 아직 날 친구라 생각할는지 궁금하구나. 그랬으면 좋겠다. 난 여전히 너를 친구라고 생각하거든.
일상에서 널 잊고 지냈던 시간이 다수였을지라도 가끔은 네 생각이 났어. 너와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몇 있는데 하나같이 날 즐겁게 하는 기억뿐이라서 말이야. 특히 내가 한창 페이스북을 할 적에 너는 내게 숱한 칭찬을 퍼부어줬었잖아. 그중에서도 네가 날 음악에 비유해줬던 거 기억나니? 네가 나를 음악으로 말하자면 쇼팽의 에올리언 하프라고 했잖아. 니체에 따르면 아름다움에는 두 가지 분류가 있는데 그중 나는 아폴론적인 것이라고 했지.
그 댓글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난 마구 웃었어. 별난 칭찬이라고 생각하면서, 요즘 말로 주접에 가까운 네 말들이 쑥스럽지만 기뻤단다. 이제 와 말하지만 네가 나를 에올리언 하프에 비유해준 그 말이 여태껏 다른 사람이 나를 표현해 준 말 중에 가장 좋았어. 그래서인지 그 뒤로 종종 그 음악이 생각나더라. 쇼팽 에튀드, 네가 꼭 들어 보라기에 들었더니 처음엔 분명 취향이 아니었거든?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곡을 찾아 듣고 있는 내가 있었어.
나는 그 곡을 들으면서 느긋하고 햇살이 만만한 이미지를 떠올려. 플레어가 반짝이는, 가슴이 부드럽게 울렁일 것 같은 이미지 말이야. 그건 내가 로망으로 품고 있는 이미지들 중 하나였는데, 그런 이미지를 내게 덧씌워줘서 고마워. 어느덧 쇼팽의 음률은 내 귀에 편안해져서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클래식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에올리언 하프라고 답할 테야.
고작 말 한마디가 타인에게 깊게 남아 그를 기쁘게 하고 취향까지 만들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야. 그런데 막상 그때는 네 말이 멋지다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네가 멋지다고 네게 직접 표현하지 못한 게 아쉬워. 그땐 그냥 받아넘겼던 네 칭찬이 날이 갈수록 고마워질수록, 그때 네가 내게 전해준 마음이 점점 더 귀하게 느껴져.
우리가 소식이 끊긴 몇 년 사이 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전보다 능숙해졌고, 좋은 건 좋다고 표현해야함을 배웠거든. 네게도 선물 같은 말들을 끌어모아 전해주고 싶은데, 어떤 말을 해야 내가 받은 기쁨을 네게 갚을 수 있을까?
널 생각하면 떠오르는 우리의 깔깔거림이 벌써 십 년 전의 것이 되어버렸기에,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진 아직 모르겠어. 그 사이 내가 변했듯 너도 조금은 변했을 테지. 그래도 나는 많이 변하지 않은 거 같은데 너도 그럴까? 시답잖은 말을 뱉어대며 깔깔댈 만큼은 철이 없을까? 이상한 유행어를 따라 하고, 입꼬리가 시원하게 벌어지며 밝게 웃고, 단발이 잘 어울리던 그 모습이 남아 있을까?
네가 그 모습을 갖추고 있다면 반가울 테고, 변한 부분이 있다면 네 새로움이 즐거울 거야. 모르는 게 많다는 건 그만큼 가까워질 거리가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 네게 말을 선물하기 위해서는 너를 다시 알아갈 시간이 필요할 테지. 그러니까 우린 또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언젠가 우리 한 번 만나자. 살아만 있다면 만날 수 있겠지, 판데믹 이후론 이 말을 진심으로 쓰곤 해. 너도, 네 주변도 무탈하길.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만날 수 있을 우리를 위해서.
다음 연락은 내가 먼저 할게.
2021년 4월 15일
여전히 너를 친구라 생각하는 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