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봄을 보내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4월은 잔인한 달.
나는 영미문학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그러니까 T.S.엘리엇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없지만, 이 시구 하나만으로도 그의 이름을 높이 사 줄 수 있을 것 같아.
날이 따듯해졌다고 좋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갑자기 더워져서 낮기온이 20도를 훌쩍 웃돌고 맨팔을 내놓아도 거뜬한 날씨가 되었다. 하지만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함이 남아 있기도 해서 꼭 얇은 외투를 챙겨야 하는 것이 상당히 귀찮다.
얇다는 것이, 봄은 두꺼운 계절이라기보단 얇은 계절이라는 것이, 봄의 이 팔랑팔랑하는 느낌이 가끔 나를 힘들게 한다.
봄날의 기분은 거품을 닮았다. 냄비에서 넘칠 듯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파르르 꺼져 버리는 거품처럼 어떤 밝음이 가슴속에 확 차올랐다가 푸시시 꺼져 버리기를 반복한다. 날씨가 밤낮으로 왔다갔다하듯 기분도 울렁울렁한다. 미소를 짓다가도 허무해지고, 하루가 종일 반짝거리다가도 밤이 되면 색 바랜 느낌이 들지.
모든 것이 선명하거나 확실하지 않은 봄날의 모호함이 마음을 밑으로 끌어당긴다. 반짝거림은 온통 신기루 속에 떠 있고 현실의 나는 바닥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현재의 봄을 지나고 있으면서도 봄이란 계절은 현실이라기보다 환상 속에나 존재하는 계절처럼 느껴진다.
특히 밤이 되면, 영영 모호함이 지속될 것 같은 뿌옇고 흐린 느낌이 봄밤에는 있다. 셰익스피어일지라도 만약 그것이 한여름 밤의 꿈이 아니라 봄밤의 꿈이었다면 애정은 선명하게 타오르지 않고 미지근하게 피어 올랐다가 땅이 식거든 아지랑이마냥 흩어졌을 것이다.
어느 지루한 봄밤, 나는 일순간 파스스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때때로 사라져버리고 싶던 적이 있기도 했지만 소란도 화려함도 없이 흩어지는 봄밤의 소멸은 싫었다. 그러고나면 봄은 또 아무도 모르게 사람들을 속이고 있을 테니까. 봄의 가장 나쁜 점은 장면의 찬란함으로 조용히 죽음을 은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봄은 찬란할수록 잔인하다. 지난 우울도 메말라가는 지금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전부 묻어버리는 봄. 밝은 낮을 노닐수록 흐릿한 봄밤과의 괴리가 커진다.
내가 확실하지 못한 사람이라서 유독 봄날이 힘든 걸까? 내가 아무렇지 않은 하늘에, 무심한 거리의 행인들에 흔들리는 사람이어서 나를 두고 여지없이 달려가는 시간이 힘들게 느껴지는 걸까? 봄은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라고들 하니까, 실은 그냥 제자리에 머물러 있고 싶은데 봄이 나를 잔인하게 시작으로 내모니까 그게 야속한 걸까?
요즘은 차라리 여름을 기다리게 된다. 뒤죽박죽인 기분이 싫어서 차라리 선명하고 뜨거운 여름을 그리게 된다. 분명 나는 즐거운 봄날을 보냈는데, 행복이 불안보다 더 커서 아름다운 봄날이 있기도 했는데, 살아가다 보면 어느 해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봄을 보내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오늘 밤 봄의 망각을 완성할 수 없는 나는 밤의 목련처럼 추락한다. 마지막 온기를 간직한 죽은 사람처럼 아름다운 봄밤. 나는 창백하고 아름다운 봄밤에 사라질 것이다. 봄밤에 취해 불행한 수풀이 우거진 숲으로 들어갈 것이다.
박지혜, 「봄을 걸어간다」 中 발췌.
시집 『햇빛』에 수록된 이 시는 내가 느끼는 봄의 불안감을 적확히 묘사한다. 꼭 전문을 읽어보길 권하는 시. 이번 봄이 끝나기 전엔 시집을 몇 권 사 볼까봐. 은유로 호흡하는 세계 속에서, 직설의 미덕을 잊고 시어 속에서 헤매다 보면 이 봄이 완전히 끝났을 때쯤엔 미로정원을 헤매이는 기분을 탈출할 수 있을까.
─2021.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