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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Nov 09. 2020

제자들의 마음을 꿰뚫는, 아 참된 스승이시다.

2020년 10월 그믐날의 단어들

이번 달부터 지역통역안내사 자격증 수업을 듣고 있다. 원래는 자격증 앞에 '지역'이 붙지 않고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따고 싶었지만 한 번 응시해보고 바로 GG를 쳤다. 지금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 일반상식 문제가 있었는데 일본의 흡연율이 얼마인가를 묻는 문제였다. 아니 담배회사나 보건복지부에서 일하지 않는 이상이야 누가 그런 숫자를 외우고 다니겠냐는 말이다. 그렇게 미련 없이 다음 시험을 포기했는데 마침 그 다음해부터 고치현에서 지역통역안내사 강좌를 열었다. 하지만 이것도 딱 한 주 도쿄 출장과 기간이 겹치는 바람에,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출장을 마치고 도쿄에서 더 놀고 싶은 내 욕심 때문에 신청을 못하다가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어디도 가지 못하게 돼서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오늘은 그 제목에서부터 따분함이 폴폴 피어나는 '여행일정관리' 수업이었다. 게다가 이른 9시부터 늦은 6시까지, 강의실을 빌릴 수 있는 모든 시간 동안 수업이 예정됐다. 아마 이번 강좌 통틀어 가장 재미없고 따분한 수업이 될 것 같았는데, 선생님이 한 줄기 빛과 같은 이야기를 해줬다. 오늘 수업 내용은 시험에 안 나옵니다. 5시 45분을 목표로 오늘 수업을 진행합시다. 제자들의 마음을 꿰뚫는, 아 참된 스승이시다.


선생님은 선생님이라기보다는 선배님이 더 적합할지 모르겠다. 원래 전문적으로 강의를 하시는 분이 아니라 현직 종사자에게 수업을 부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딱딱한 정보 전달보다는 본인의 경험담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객의 안전이다. 스위스의 마터호른이 잘 보이는 마을을 산책하는 프로그램으로 현지에 도착했지만 당장이라도 벼락이 내려칠 것처럼 하늘이 울고 있어서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되돌아온 적이 있다. 왜냐하면 주변에 사람 키보다 높은 것이 없어서 번개가 내려치면 사람이 맞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에이-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이렇게 판단한 이유가 있었다. 몇 년 전 고교 야구에서 평지보다 불과 몇 센티미터 높은 마운드에 선 투수가 벼락을 맞아 사망한 적이 있었고, 재판에서 학교 측에 경기를 재개한 책임을 물었다고 한다. 고로 안전빵이 최고라는 말씀이시다.


오후에는 직접 관광지를 안내해보는 실습을 했다. 앉은 순서대로 조를 짰는데 우리 조는 공교롭게 한국이 3명에 일본인 1명이 한 조를 이루게 됐다. 일본인 T는 면식이 있는 얼굴이었는데 상대도 그렇게 생각했나 보다. 그러면 전에 어디서 본 적 있지 않나요 하고 물어보면 좋을 것을, 전혀 모르는 척을 하면서 내가 하는 일이며 일하는 곳 등을 떠보는 것이 아닌가. 그 꼴이 보기 싫어 나도 작심을 하고서 에둘러 대답하거나 분위기를 살피며 대답을 피했다. 아직은 마음 수양이 부족하다.


그러고 보니 할로윈데이였는데 전혀 그런 분위기를 느끼지 못했다. 달은 매일같이 이지러졌다가 차기를 반복하는데 오늘은 한 달 사이에 두 번째 보름달이 뜨는 블루문이란다. 스마트폰을 들고 베란다고 나갔다. 앞 건물 위로 오른 달을 사진 찍으려면 몸을 베란다 난간 밖으로 살짝 내밀어야 했는데, 몸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달이 눈부셔 계속 보지는 못하고 사진을 두어 장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블루문



たばこ:담배

知(し)らないふり:모르는 척

満月(まんげつ):보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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