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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Nov 24. 2020

저녁 내 우리는 연신 토끼의 뒤를 쫓았다.

2020년 11월 엿새날의 단어들

K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 훠궈를 만들어 먹었다. 고정 멤버와도 같은 나와 M 외에도 종종 함께 먹는 R과 Me,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일본인 직원인 I와 N이 모였다. K가 갖고 있는 훠궈 소스는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라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들을 위해 마트에서 순한맛 훠궈 소스도 사왔다. 매운맛과 순한맛, 두 종류의 훠궈에 따라 사람들의 자리도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K와 Me 그리고 나는 매운맛 훠궈 앞에, R과 I, N은 순한맛 훠궈 앞에, 그리고 몇 번인가 매운맛 훠궈를 먹어본 적이 있는 M은 두 훠궈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매운맛 훠궈소스를 펄펄 끓는 냄비에 풀어넣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도 매운맛을 띠었는데, I와 N은 방안을 메우기 시작한 향만으로도 맵다고 했다.


훠궈를 먹을 때면 보통 K와 M이 재료를 사와 먹기 좋게 자르고 다듬어 상을 차리고, 나는 사람들의 젓가락질이 멈추지 않도록 접시와 냄비를 재빠르게 스캔해가며 부족한 재료들을 냄비에 채워 넣는 역할을 맡는다. 배추, 숙주나물, 버섯은 냄비에 들어가면 얼마 안가 숨이 죽기 때문에 아낌없이 듬뿍 넣는다. 두 번에 나눠먹기 좋게 자른 두부는 으스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밀어 넣고, 샤부샤부용 얇은 고기는 골고루 익도록 한장 한장 정성스럽게 펴서 국물 위에 얹는다. 채소를 담았던 그릇들이 바닥을 보이고 고기가 펼쳐져 있던 플라스틱 접시들이 차곡차곡 포개지면서, 비로소 내 임무는 순조롭게 끝을 향해 달려간다.


훠궈를 다 먹고 카드 게임을 했다. 아이리시 스냅, 스푼, 훌라. 카드 게임이 서서히 질릴 때쯤, 필리핀에서 어학연수를 한 적이 있는 N이 한국인 친구에게 배웠다는 바니바니를 하자고 했다. 게임을 설명하면서 바니바니와 당근당근을 포즈와 함께 시범 보였더니 K가 아주 자지러졌다. 얼마나 재밌었는지 동영상을 찍게 게임을 진행하라고 할 정도였다. 저녁 내 우리는 연신 토끼의 뒤를 쫓았다. 매운 내가 나가라고 열어놓은 창문으로 비가 내리면서 풍기는 흙냄새가 솔솔 들어왔다. 우리는 비가 더 굵어지기 전에 헤어졌다.


湯気(ゆげ):김
スキャン:스캔
ニンジン(人参):당근. 한자로는 '인삼'이라고 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삼은 '고려인삼(高麗人参 こうらいにんじん)'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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