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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Nov 30. 2020

자기는 재산 많은 재벌이라면서 맞받아쳤다.

2020년 11월 열하룻날의 단어들

한국어를 공부하는 Y와 저녁을 먹었다. 전에 M과 함께 저녁을 먹을 때, 덴카아지(天下味) 고깃집은 가격이 비싼 거 같아서 안 가봤다고 했던 것을 기억했다가 같이 가자고 한 것이다. 게다가 내가 차 없이 자전거로 다니는  알고 집 앞까지 마중 와줬다. 이런 Y의 집은 산너머 하루노(春野)에 있으니 더 고맙다.


Y를 알고 지낸 것은 일 년 하고도 반년쯤 됐는데, 사실 처음 만난 것은 그보다 몇 개월 앞선다. Y는 어느 프로그램으로 한국엘 다녀왔는데, 한국 가기 전에 진행했던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 뒤로는 만날 일이 없다가 한국어 회화 모임에서 다시 만났다. 회화 모임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모임에서 알게 된 SW에게 한국어 과외도 받으면서 인연이 이어졌다. SW가 한국에 돌아가고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어느 신문 기사를 보고 연락이 왔다. 한국 유학생이 대학에서 나눠주는 식재료를 받고 인터뷰한 내용이었는데, Y는 그 학생이 먹을 것이 없어서 원조받은 줄 알고 뭔가 도움을 주고자 연락한 것이다. 물론 실상은 전혀 달랐다. 국적에 상관없이 기숙사에 있던 학생들 모두 식재료를 받으러 갔지만, 기자는 일본 학생보다 외국 학생이 임팩트가 클 거라고 생각해서 한국 유학생에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쨌든 이것도 인연이라고 Y는 HN에게 한국어를 배우기로 했고, 그 뒤로도 인연이 이어져 오늘은 고기를 먹으러 갔다.


Y는 자신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준 SW와 HN의 차이를 한 가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지금까지 한국어 수업을 하면서 SW는 단 한 번도 제시간에 온 적이 없었고 HN는 단 한 번도 본인보다 늦게 온 적이 없었단다. 사람을 모두 알고 있는 나는 이보다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아마 오늘도 HN는 고깃집에 먼저 와있을 거라며 웃으면서 가게에 들어섰는데 웬일인지 보이지 않는다. 그래 늦을 때도 있지 하는 순간 HN가 가게로 들어섰다. 너무 일찍 와서 기다리다가 근처 중고서점에 다녀오는 길이란다. 만화책이나 샀겠거니 했는데 전공책을 사왔다. 확실히 SW와는 다르다.


Y는 많이 먹으면 저녁에 속이 불편하다며 고기는 우리 보고 다 먹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하면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면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보려고 했다. 다만 아직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부 알아듣지는 못 했다. 한국에서 짜장면 먹은 이야기도 해줬다. 본인이 양파를 안 먹는데 양파를 한국어로 몰라서 짜장면에 양파 빼 달라는 얘기를 못했단다. 아이고... 그냥 다마네기라고 해도 알아듣는데... Y는 어떻게 다들 다마네기를 알고 있냐고 물어봤고 나는 역사적으로 모를 수가 없다고 했다. Y는 곧 아아아 하며 무슨 말인지 눈치를 챘다. 본인은 지금까지 미국도 가보고 유럽도 가봤지만 역시 한국이 제일 좋다는 말은 고마웠다.


오늘도 Y가 계산한다길래 얼마만이라도 받아주시라고 하니 극구 사양한다. 저도 돈 벌어요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니 자기는 재산 많은 재벌이라면서 맞받아쳤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번 자신이 재벌이라는 사실을 주지 시켜 주면서, 한국어를 공부한 덕에 나도, SW도, HN도 알게 되었으니 정말이지 한국어 공부하길 잘했다고 했다. 지난달에 본 한국어 시험은 하필이면 시험 전날 남편한테 코감기가 옮아 결과를 기대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한국어 공부는 계속하겠다며 열의를 보였다. 내년에는 한국에서 양파를 뺀 짜장면을 대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

Y에게 선물한 손수건


縁(えん):인연
玉ねぎ(たまねぎ):양파
会計(かいけい):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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