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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Dec 01. 2020

학교는 고치시에서 가장 높다는 구이시산 어디쯤이었다.

2020년 11월 열사흘날의 단어들

중학생들과 함께 하는 교류 프로그램에 다녀왔다. 프로그램의 취지는 영어를 중점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이 외국인과 교류하면서 영어로 지역을 소개하는 것이었는데, 나를 비롯해 같이 일하는 외국인들이 초대를 받았다. 집합 시각에 맞춰 도착하니 방송국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이 보였다. 보아하니 '중학생들, 외국인들과 교류'라는 제목으로 저녁 뉴스쯤에 방송될 것 같았다.


학교는 고치시에서 가장 높다는 구이시산 어디쯤이었다. 구불구불 산길을 한참 올라가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는데, 그동안 시내에서 가까운 고다이산 전망대에서 보던 것과는 다른 운치가 있었다.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학생들이 현수막을 들고, 그리고 방송국 사람들이 구도가 잘 잡히는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카메라가 알게 모르게 정해놓은 안에서 인사를 나누고 실내로 들어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첫 순서는 자기소개였다. 멋지게 영어로 하고 싶었지만 내 이름과 출신지를 이야기하고 나니 아는 영어가 바닥이 났다. 사실 영어를 엄청 잘하지만 일본어는 더 잘하니까 지금부터 일본어로 이야기하겠다고 하고 일본어로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아무래도 뉴스 제목은 '중학생들, 외국인들과 '영어로' 교류'인가 보다. 내가 일본어로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카메라맨이 잠시 촬영을 멈추었고, 나는 본의 아니게 카메라맨의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를 선사했다.


학생들과 팀을 이뤄 되도록 영어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우동을 만들었다. 먼저 반죽을 만든 다음 밀대로 얇게 펴고 뭉치기를 반복한 뒤, 비닐에 넣어 발로 밟아줬다. 결국 발로 밟을 줄 알았다면 괜히 손목이 나가라 밀대를 밀지 않았을 텐데. 얇게 편 반죽을 돌아가면서 썰어 면을 만들었다. 다들 오른손에 잡은 칼이 무서워 반죽을 잡아주는 왼손이 뒤로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 면이 점점 두꺼워졌다. 아무리 우동면이라지만 속이 익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다가가 칼과 가까워지도록 반죽을 바투 잡았다. 면을 얇게 써니 보고 있던 아이들이 와- 다. 으쓱 올라간 어깨는 숨기지 못하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해서 면을 썰었다. 날이 쌀쌀하니 차갑게 식은 도시락보다도 따뜻한 우동이 훨씬 맛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구이시산에서 가이드? 활동을 하는 분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산에는 무슨 동물이 있을까요? 사슴, 멧돼지, 가끔 원숭이, 곰은 아마 없을 거예요. 사슴뿔도 보여줬다. 사슴은 매년 뿔이 똑 떨어지고 새 뿔이 자라는데, 한 살씩 먹을 때마다 갈래가 나눠지기 때문에 뿔을 보면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그렇게 뿔이 자라는 것도 4살까지고 5살부터는 4살 때와 같은 뿔이 자라기 때문에 그 이후에 뿔만 보고 나이를 알아내기는 어렵다. 가이드는 영사기에 사용하는 슬라이드 틀 스무 개를 나눠주고 구이시산의 가을을 담아오라고도 했다. 거 비도 오는데 귀찮게 하시네 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나중에는 다른 팀보다 더 예쁘고 독특한 것을 찾으려고 혈안이 됐다.


가이드의 시간이 끝나자 아이들이 준비한 영어로 지역 소개하기, 애니메이션 퀴즈를 진행했다. 다행히 아이들의 영어는 모두 이해할 수 있어서 적절하게 리액션을 할 수 있었다. 다만 한 아이가 인상 깊었다. 또래 친구들보다 조금 왜소한 체격의 아이였는데, 영어로 말할 때는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이드의 이야기를 영어로 통역하는데 그 센스가 통역 일을 하는 우리 못지않았다. 전문적이거나 영어로 표현하기 어려워 보이는 일본어도, 상대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파악해서 간단한 영어로 통역했다. 나는 그 아이가 통역을 마칠 때마다 진심으로 박수를 다.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시내로 돌아갔다. 특별히 엄청나게 체력이 소모되는 일을 한 것도 아니지만 산을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모두 곯아떨어졌다. 내년엔 1박2일 일정으로 캠프를 하자며 인사하고 헤어졌다.

구이시산의 가을


鹿(しか):사슴. 치과(歯科)와 발음이 같다.
猪(いのしし):멧돼지. 한국과 달리 일본의 12간지는 돼지가 아니라 멧돼지다.
猿(さる):원숭이
熊(くま)곰. 그래서 구마모토현(熊本県) 캐릭터 이름이 'くまモ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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