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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Dec 02. 2020

한 번 더 만나요 하고 인사하려던 것을 꾹 참았다.

2020년 11월 열나흘날의 단어들

언젠가 한 번 하긴 해야 하는데 시기가 너무 일렀다. 게다가 주인공인 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술자리 한 번 갖고 싶어서 자리를 마련한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들이 송별회를 열어준다는데 고맙다는 말은커녕 꿍얼꿍얼 말이 참 많구나. 하지만 억울하다. 변명할 것이 있단 말이다. 아니 세상에 누가 송별회를 반년도 전에, 그것도 주인공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통보식으로 이야기하냔 말이다. 통역봉사모임 Ko한테 송별회 이야기를 전체 메일로 공지받고 고마운 마음보다도 화가 나서 답장도 미뤄두었다. 이렇게 화가 난 적이 얼마만인가.


Ko 집에 도착하니 마침 N과 Y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Y는 김밥을 직접 만들었는데 맛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걱정했다. 나는 염려 마시라, 김밥은 맛이 없을 수가 없다며 안심시키면서 엘리베이터를 같이 기다렸다. 주식으로 제법 큰돈을 벌었다는 Ko는 고치성이 보이는 맨션 꼭대기 층에 집을 마련했는데, 아니 도대체 얼마나 돈을 벌어서 얼마나 높은 곳에 집을 샀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엘리베이터가 내려오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기다리는데 N은 엘리베이터 버튼을 안 눌렀다며 웃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신식 엘리베이터는 빠른 속도로 조용히 1층에 도착했다.


Ku는 일이 있다며 인사만 하고 바로 자리를 떴고 얼마 전에 출산해서 오지 못한 O와는 영상통화를 했다. 준비한 음식이며 각자 사온 음식이 한상이었다. 술은 맥주와 일본술 그리고 양주 비슷한 것이 있었다. 사연인즉 이렇다. 최근에 통역봉사모임에 갔을 때 Yo가 보이지 않아 근황을 물으니 면허를 반납해서 시내까지 나오기 힘들어져 요샌 안 온단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Ko가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어 전화를 해보니 지난 8월에 돌아가셨단다. 그래 Ko와 N 둘이서 Yo 집에 부주를 하러 갔고, 술 드시겠냐고 묻는 사모님 말에 Ko가 냉큼 네 해서 받아온 술이 바로 양주 비슷한 것의 사연이다. 프랑스에 살던 Yo의 딸이 사온 코냑이라는데, 우리는 다 같이 맛보자며 코냑을 종이컵에 나눠 따랐다. 나는 죽은 사람이 남긴 술을 이렇게 산 사람들이 나눠마시는 모습이 조금은 어색했다.


Y가 만든 김밥은 진짜 맛있었고, 나는 Y 앞에서 부러 김밥을 계속 가져다 먹었다. Y는 맛있게 먹어줘서 고맙다며 남은 김밥도 챙겨가라고 했고 나는 고맙다며 받았다. 단톡방에서 다소 충격적인 근황을 밝히며 통역봉사활동 잠정 중단을 선언했던 Ki도 왔다. 나는 따로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서 무알콜 맥주를 따라주거나 별 의미 없는 말들을 간간히 건넸다. N의 말에 따르자면 여리여리하던 사람이 일을 시작하면서 (좋은 의미로) 눈빛이 바뀌었다는 A도 왔다. 나는 그의 직업 때문에 지레짐작 20대 후반쯤 됐겠거니 생각했는데, 아직 25이라고 해서 마냥 부러웠다.


가장 연장자인 N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송별회도 정리됐다. Y는 별거 아니라면서 오도야키(尾戸焼き) 도자기 컵을 선물로 줬다. 나는 정말이지 너무 고마웠는데, 그것이 꼭 선물을 받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선물을 받으리라고 전혀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그러했다. 이 모습을 보고 Ko는 선물을 준비 못했다며 본인이 갖고 있는 일본 장난감 겐다마를 가져가겠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내 송별회에 내가 오기 싫었지만 막상 와보니 모두들 고마워 귀국하기 전에 한 번 더 만나요 하고 인사하려던 것을 꾹 참았다. 왜냐하면 순간의 감정에 흔들리는 이 인사를 나는 이곳을 나서자마자 후회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집에 도착해서는 괜한 말을 안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고, 반년이나 이른 첫 번째 송별회는 무사히 끝이 났다.


飲み会(のみかい):술자리
香典(こうでん):부주
ノンアルコール:무알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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