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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Dec 03. 2020

아니면 그저 오늘은 조금 센티했는지도 모르겠다.

2020년 11월 열닷새날의 단어들

지역 통역안내사 수업 일정에는 한국어 수업도 포함되어 있다. 올바르고 좀 더 수준 높은 한국어를 구사하기 위한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올해는 공교롭게 수강생 네 명 전원이 한국인이지만 '통역'안내사 수업이기 때문에 한국어 수업을 받는 것이다. 이런 우리는 가르치는 선생님은 제주도에 살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본으로 이주한 재일교포 3세다. 선생님은 수업 첫날, 우리의 한국어 실력이 더 뛰어나니 시험 걱정은 안 도 된다며 잔뜩 겁먹은 우리를 안심시켜줬다. 아니 사실 나는 시험 자체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한국어도 그렇지만 통역안내사로서 소개해야 할 내용들이 그동안 고치에서 생활하고 일하면서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편한 마음으로, 실전 연습한다는 생각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선생님이 고치에 한국어를 공부하는 친구가 있는데 소개해줘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물론, 네 괜찮죠! 연락처 알려주셔도 돼요! 라고 대답했지만 실은 속으로 약간 배배 꼬였다. 분명 어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송별회도 열어주고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며 작별 선물도 받았건만, 오늘은 조금 지치는 기분이었다. 일본에 와서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고마우면서도, 가끔은 그냥 나를 나로 대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가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나에게 관심을 갖고 관계가 이어졌겠나 따져보면, 내 생각이 이기적이고 욕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다. 가끔은 일본의 이 시골 동네에서 멸종위기종이나 전설의 포켓몬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그저 오늘은 조금 센티했는지도 모르겠다.


連絡先(れんらくさき):연락처
絶滅危惧種(ぜつめつきぐしゅ):멸종위기종
センチメンタル:센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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