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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Dec 11. 2020

오늘 100엔어치 기분 좋게 충동구매를 했다.

2020년 11월 스무닷새날의 단어들

대학생들 대상으로 문화 강좌를 했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대실패였다. 자신의 주특기인 기병 부대를 과신하여 험한 조령 길목을 그냥 내주고 너른 탄금대에서 왜군의 조총 부대를 맞이한 신립 장군에 비견할 정도로 참패였다. 몇 달 전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날치 밴드의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을 보여줬다. 내 나름 고민한다고, 영상을 그냥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수궁가 이야기를 해준 다음에 거북이를 찾아보라고 했다. 나는 학생들이 흥미진진해하며 두 눈을 부릅뜨고 거북이를 찾을 줄 알았는데, 일본 학생들에게는 조선의 흥이 전해지지 않았는지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나와 눈을 마주친 몇몇 학생만이 차마 딴짓은 하지 못하고 멍하니 영상을 봤다. 탄금대에서 대패하고 한양, 개성, 평양을 연달아 내준 조선처럼 그 이후의 강좌 내용도 학생들을 흡입시키지 못했다. 다만 한글로 자기 이름 쓰기 시간에는 조금 활기를 되찾기도 했는데, 역시 갓세종이시다. 함께 갔던 K는 한국인인 나나 재밌지 외국인한테 영상을 6개나 보여주는 것은 무리수였다고 실패 원인을 분석해줬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양심시장에 들렀다. K는 역시 집 앞에 있는 마트보다 훨씬 싸다며 과일과 채소를 한 봉지씩 집어 들었다. 나는 옆에서 지켜보다가 K의 말에 혹해서 양파 한 봉지를 골랐다. 알은 작지만 5개나 들어있어서 확실히 이득을 본 것 같다. 어떤 과일이든 채소든, 양심시장에 있는 모든 것은 한 봉지에 100엔이다. 오늘 100엔어치 기분 좋게 충동구매를 했다.


良心市(りょうしんいち):양심시장
お得(とく):이득
衝動買い(しょうどうがい):충동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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