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시간에 쫓겨 집을 나서는데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소리의 정체는 그동안 집 어딘가에서 물이 샐 때마다 수리를 해줬던 M이었다. 약삭빠른 나는 인사만 하고 지나가려다가 며칠 전부터 계단 보안등이 나간 것이 떠올라 잠시 발걸음을 멈춰서는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했다. M은 멈춰 선 나를 보고는 낙서한 것을 봤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전날 K가 사는 건물에도 누군가 낙서를 해놨다고 했다. 욕을 쓴 것도 아니고 그림을 그린 것도 아니고 동그라미와 선으로 무슨 모양을 그렸다는데, 예전에 한밤 중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 것이며 비 오는 날 새벽 맞은편 건물 계단에서 누가 술을 마시고 있던 것이 떠올라 기분이 께름칙했다.
저녁엔 R에게 한국어를 알려주고 우동을 먹으러 갔다. 나는 자신만만하게 우동 종류를 설명해주겠다고 하고서는, 메뉴표 처음에 쓰여있는 가케우동과 붓카케우동을 구분할 줄 몰라 쏘리라고 했다. 이러고도 그동안 용케 우동집에서 맛있게 잘 먹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