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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우 Jan 27. 2021

크, 이게 예술이지.

2021년 1월 스무닷새날의 단어들

벌써 몇 년 전인가. 고등학교에서 요리교실을 열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내 밥상도 못 차리는데 요리강좌라니. 다행히 일본에서도 CJ에서 만든 호떡믹스가 들어와 있어서 호떡을 만들기로 했다. 요리강좌 전에 같이 일하는 외국인 직원들을 불러서 연습 삼아 한 번 만들어봤다. 호떡 속이 터지고, 그 안에서 흘러나온 설탕이 프라이팬에 눌어붙으면서 방 안이 연기로 자욱해졌다. 방 안에 연기 탐지기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요리교실 당일, 한국인에게 호떡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야기하고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 뒤 곧바로 요리를 시작했다. 모든 것은 착착 순조롭게 진행됐고 이제 반죽을 떼서 프라이팬에 올릴 차례였다. 나는 '적당히' 반죽을 떼라고 했고 순간 교실이 술렁거렸다. '적당히'란 얼마를 이야기하는 것이냐. 분명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줬지만 모두들 정확한 수치를 원했다. '적당히'는 '적당히'인데, 수치를 알려줘도 자로 재가면서 반죽을 떼지 않을 텐데. 사실 다른 요리교실에서 채소를 '적당히' 썰어주세요 하면 적당히 '몇 센티'요?라고 묻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철저히 준비했건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질문을 받아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차도, 검도, 궁도, 서도, 화도, 향도, 이 외에도. 어느 책에선가 일본은 모든 것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 '도'를 만든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내 생각엔 그저 규칙이랄까 틀을 좋아하는 것 같다. 여기서 장인정신이 나온 것 같기도 하면서 가끔은 융통성이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K와 M이 기모노 대회에 나간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모노의 아름다움을 겨루는 대회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순서에 따라 기모노를 빠르고 예쁘게 입는 것을 겨룬단다. 작년 겨울부터 기모노 선생님이 한 명씩 붙어서 일주일에 두 번 연습하는데, 오늘은 처음으로 구경하러 가봤다. 두 사람은 네모난 천 위에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기모노를 입을 때 사용하는 다른 장식?,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선생님이 스마트폰을 꺼내 스톱워치 어플을 켠 뒤 시작 버튼을 누르자 연습이 시작됐다. 두 사람은 서둘러 장식을 만들어 몸에 둘렀다. 사실 나는 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했던 제한시간에 안에 옷 많이 껴입기, 옷 갈아입기 같은 게임과 비슷한 맥락 아닌가? 하지만 K와 M이 사뭇 진지하고 두 선생님이 옷매무새를 봐주는 것을 보면 분명 결은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한 차례 연습이 끝나고 두 선생님이 M을 봐주고 있을 때, 눈이 마주친 K에게 가운데 모았던 두 손을 양 옆으로 뻗으며 이게 끝이냐고 물었다. K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치를 보다가 나한테 이제 집에 간다고 이야기를 꺼내 줬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 크, 이게 예술이지. 대회가 열리기 전에 한 번 더 보러 와야겠다.



適当に(てきとうに):적당히
融通が利かない(ゆうづうがきかない):융통성이 없다
正座(せいざ):무릎 꿇고 앉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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